과학기술 프런티어
美·日 이어 세계 3번째 개발
'1초 기준' 정하는 새 표준 기대
[ 김태훈 기자 ]
“1초 기준을 정하는 데 사용하는 세슘(Cs) 원자 시계는 1967년 표준으로 정해졌습니다. 이번에 개발한 이터븀(Yb) 원자 시계는 이보다 정밀도가 1000배 이상 높아 새로운 표준 후보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유대혁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시간센터장(45) 연구팀은 최근 ‘이터븀 원자 광격자(光格子) 시계’를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이 시계는 1억년에 오차가 0.92초에 불과한 세계 최고 수준의 초정밀 시계다. 유 센터장은 “이터븀은 원자의 에너지 상태가 단순해 세계 각국에서 시간 표준으로 활용하기 위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며 “이터븀 원자 시계가 표준이 되면 우리 기술을 해외에 전수해 국가 위상을 높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확도 1000배 높인 원자 시계
사람들은 오랜 기간 태양의 자전과 공전 속도를 이용해 시간을 측정했다. 하지만 지구의 자전과 공전 속도는 조금씩 느려져 변함없는 기준으로 삼는 데 한계를 보였다. 새로운 기준으로 선택한 것은 세슘 원자 시계다. 1967년 제13차 국제도량형 총회에서 이를 시간 표준으로 정했다.
원자 시계는 원자가 가진 고유의 진동수를 이용해 시간을 측정한다. 진공 상태에서 지구나 주변 물질이 만드는 자기장, 전자파 등을 차단한 뒤 1초간 진동한 횟수를 찾아내 기준으로 사용한다. 세슘 원자는 1초에 무려 91억9263만1770번 진동하는데 이게 현재 1초의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유 센터장 연구팀이 개발한 원자 시계는 세슘 대신 이터븀 원자를 이용한다. 이터븀 원자는 초당 진동수가 518조2958억번 이상이다. 세슘보다 진동수가 5만6000배 많다. 유 센터장은 “자의 눈금이 촘촘할수록 더 정밀한 거리 측정이 가능한 것처럼 원자 진동수가 많은 이터븀이 세슘보다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며 “기존 세슘 원자 시계의 오차가 10만년에 1초인 데 반해 이터븀 원자 시계는 1억년에 0.92초로 1000배 이상 정확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오차 줄이려 실험실까지 옮겨
연구팀은 이터븀 원자의 진동수를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해 레이저를 이용한 ‘광격자 기술’을 자체 개발했다. 광격자 기술은 레이저광선을 사방에서 쏘아 가상의 상자를 만들고 그 속에 원자를 가두는 방식이다. 그런 뒤 이터븀과 고유 진동수가 같은 강한 레이저를 만들어 원자에 쏘면 고유 진동수를 측정할 수 있다.
수헤르츠(㎐)까지 변동 없이 진동하는 초미세 선폭 레이저를 개발하는 게 핵심인데 개발 경험이 없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았다. 2011년에는 몇 달에 걸쳐 실험실을 통째로 옮기기도 했다. 레이저 주파수가 100㎐ 이상 계속 흔들렸는데 2층에 위치한 실험 환경이 문제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유 센터장은 “2층 실험실에서 개발하다 보니 미세 진동에 영향을 받았고 옆 실험실에서 진공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로터리 펌프에도 영향을 미쳤다”며 “실험실을 옮기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지만 이후 정확도를 크게 높이는 데 성공했다”고 소개했다.
◆GPS 구축 등 첨단 산업 기반 기술
광격자 기술을 이용한 이터븀 원자 시계를 개발한 것은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다. 최근 시간 표준을 재정의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한데 한국이 관련 표준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게 과학계의 평가다.
하지만 20여년 전 관련 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주변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외국에서 돈을 주고 원자 시계를 사오는 게 더 경제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유 센터장은 “위성항법시스템(GPS)을 구축하기 위한 인공위성이나 우주선 등에는 오차가 1억년에 1초 미만의 원자 시계가 탑재된다”며 “최근 한국도 독자 항법위성 개발 계획을 수립했는데 이터븀 원자 시계가 기반 기술로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순한 경제적 이유로 연구개발을 포기했다면 독자 항법위성 개발 자체가 불가능했을 수 있다”며 “시간 표준 같은 기초과학은 마라톤 선수를 키우는 것처럼 긴 호흡으로 육성해야 할 분야”라고 강조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