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선물 문화 바꾼 '모바일 상품권'
대한민국 선물의 일상화
언제나…퇴근길 '야간당직 대타' 동료에게
어디서나…유학간 여친이 밸런타인 초콜릿
간편하게…터치 한번이면 확인되는 '정성'
[ 임근호 기자 ]
연인 사이에 초콜릿을 주고받는 날인 지난 14일 밸런타인데이. 혼자 쓸쓸하게 이날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던 회사원 김장현 씨(32)는 ‘깜짝 선물’을 받았다. 미국에 유학 중인 여자 친구로부터 초콜릿 모바일 상품권을 받은 것. 그는 “멀리 떨어져 있어 전혀 기대하지 못 했다”며 “화이트데이인 다음달 14일엔 제가 사탕 선물을 보내주고 싶지만 미국에선 모바일 상품권을 쓸 수 없는 게 애석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물리적 거리에 관계없이 선물을 자유롭게 보내고 받을 수 있는 건 모바일 상품권이 가져온 중요한 변화다.
◆카톡 설 선물, 매년 두 자리 이상 증가
카카오는 카카오톡을 통해 2011년부터 명절 선물 기획전을 열고 있다. 받는 사람이 어디에 있든 터치 한 번으로 선물을 보낼 수 있어 매년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카카오 관계자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선 택배로 보낼 수 있는 마감 날짜가 있어 그 이후에는 선물을 보내고 싶어도 보낼 방법이 없다”며 “카카오톡에선 택배 마감을 신경 쓰지 않고 선물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설에 가까워질수록 몰린다”고 설명했다.
카카오에 따르면 설 선물의 전년 대비 매출 증가율은 2012년 135%, 2013년 280%, 올해 80%에 달했다. 스팸 과일 소고기 홍삼 세트 등 1만원에서 10만원에 이르기까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명절 선물 세트가 다 구비돼 있다.
이번 설에 고향인 순천에 내려가지 못해 부모님께 5만1900원짜리 ‘횡성한우 알뜰1호’ 세트를 보낸 직장인 최민기 씨(35)는 “얼굴도 보이지 않고 선물을 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아직까지 다른 어른들에게 모바일 상품권으로 선물을 보내지는 못한다”며 “다만 가족 간이나 친구 사이에는 모바일 상품권으로 편하게 보낼 수 있어 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바일 상품권 덕분에 멀리 떨어져 있던 친구와 사이가 다시 돈독해진 경우도 있다. 부산에서 군 생활을 한 회사원 윤성환 씨(30)는 문득 같이 군 생활을 했던 동기 생각이 나 카카오톡으로 커피 쿠폰을 보냈다. 그 친구는 “갑자기 뭐냐”며 웃으며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그렇게 옛날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가 서울에 올라왔을 때 같이 만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음료 한 잔으로 선물의 일상화
모바일 상품권이 가져온 또 다른 변화는 선물의 일상화다. 이전에는 생일이나 명절, 입학, 졸업 등 무슨 일이 있어야만 선물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때나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로 바뀌고 있다. 대학생 서희정 씨(21)는 지난 기말고사 때 친구에게 에너지 음료를 모바일 상품권으로 보내줬다. “마시고 밤새워서 열공(열심히 공부)하라”는 의미였다.
IBM, 시스코 등에서 정보기술(IT) 장비를 받아와 국내 기업에 공급하는 모 대기업 계열사 부장은 틈날 때마다 직원들에게 스마트폰으로 커피 쿠폰을 뿌린다. 그는 “직원들이 영업직이라 매일 밖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커피 한 잔 사주기가 어렵다”며 “소액이지만 직원들 사기를 올리는 데엔 꽤 효과적”이라고 귀띔했다.
이한석 상명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오프라인으로 선물을 줄 때에는 커피 한 잔이나 아이스크림 하나를 선물이라고 주는 게 계면쩍어 보일 수 있지만 모바일 상품권을 통하면 주는 사람도 편하게 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모바일 상품권으로 팔리는 상품 중에선 커피 빵 케이크 등 간단한 먹을거리가 가장 인기있는 품목이다.
◆고액 상품권 오가는 부작용도
남들 눈에 안 띄고 선물을 보낼 수 있다 보니 뜻하지 않은 부작용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학부모들이 학교 선생님들에게 보내는 선물이 그렇다. 한 초등학교 선생님은 “커피나 빵 같은 경우는 애들이랑 나눠 먹을 수도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있지만 10만원 이상의 백화점 상품권을 스마트폰으로 보내주는 학부모도 있다”며 “모바일 상품권은 거절하는 버튼이 없어 종이 상품권과 다르게 한 번 받으면 돌려주는 일도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모바일 상품권을 통해 고액의 선물이 오간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주의를 당부하는 지침을 내린 상태”라며 “개인의 스마트폰 간에 오가다 보니 단속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2006년 ‘우리는 왜 선물을 주고받는가’란 책을 펴낸 김정주 씨는 “한국에선 값비싼 물건,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선물해야 예의를 다한다는 생각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다”며 “특히 외국에 비해 선물과 뇌물의 경계가 모호한 점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