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오피스
'미스터 해결사'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 그는 아직 '도전'에 배고프다
軍에서 리더십 키워
한국인 첫 GE본사 사장 맡아…삼성SDI·카드 경영능력 검증
"난 부족한 사람"
전문가 찾아내 적재적소 배치…현장 직원들과 '티타임 소통'
[ 김보형 기자 ] 지난해 12월4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매주 수요일 오전 8시에 열리는 삼성 수요사장단회의에 계열사 최고경영자(CEO)가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잰걸음으로 회의장으로 향하던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56)은 건설 사업을 맡은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지난 30년 동안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해왔다”는 짧은 답으로 새 업무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런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그의 이력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최 사장은 한국인 최초로 GE 본사 사장을 맡은 이후 삼성전자 디지털프린팅사업 부문과 삼성SDI, 삼성카드 CEO로 일했다. 에너지, 전자,금융에 이어 이번에는 건설 분야를 맡게 된 것이다. CEO 경력만 18년째로 직업이 사장인 셈이다. 그룹 내에서 뭘 맡겨도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릴 경영인으로 꼽히는 이유다.
군 복무 때 깨달은 신뢰의 힘
최 사장의 아버지는 주멕시코 대사와 주영국 대사를 지낸 최경록 전 교통부 장관이다. 그는 아홉 살 때부터 해외에서 살았다. 초등학교를 멕시코에서 다녔고, 미국에서 고교(조지타운 프렙스쿨)와 대학(터프츠대 경제학과)을 마쳤다. 이후 조지워싱턴대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했다.
15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그는 공군학사장교(77기)로 입대해 3년6개월 복무했다. 학창 시절을 해외에서 보낸 그에게 군 생활은 고난 그 자체였다.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했던 탓에 신상명세서에 최종학력을 ‘졸지 워싱턴(조지워싱턴대)’이라고 잘못 써 한동안 군대에서 ‘졸지’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소대장으로 부임해 사병들을 지휘하면서 얻은 깨달음이 있다. 바로 ‘아랫사람을 믿는 만큼 성과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교훈이다. 최 사장은 그런 교훈을 집요하게 실천했던 것을 장수 CEO의 비결로 꼽는다.
GE에 들어갈 때는 공군장교 경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88년 한국이 진행한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 참여를 준비하던 GE가 ‘외국에서 10년 이상 공부해 영어에 능통하고 공군장교 출신인 한국인’을 수소문한 것. 이 조건에 맞는 한국인은 최 사장이 유일했다. 이후 그는 승승장구하며 GE에너지의 전 세계 영업총괄 사장 등 세계 최대 제조업체인 GE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2004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처음 GE그룹을 이끄는 ‘GE 본사 사장’(GE Corporate Officer)에 올라 글로벌 경영 역량을 펼쳐 보였다.
위기 때 빛난 해결사 본능
2007년 삼성전자 고문으로 영입된 뒤 맡은 자리는 대부분 사업 환경이 나빠지거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야 하는 곳이었다. 삼성전자의 차세대 전략사업인 디지털프린팅사업부를 맡아 레이저복합기를 세계 1위에 올려 놓았고 삼성SDI 사장 때는 2차전지 세계 시장 점유율 20%를 돌파하며 일본 산요를 꺾었다.
해결사 본능은 2010년 말 삼성카드 사장으로 옮긴 뒤 유감없이 발휘됐다. 당시 삼성카드는 업계 3~4위를 맴돌며 그룹의 ‘미운 오리’ 취급을 받았다. 최 사장도 금융업 경험이 전무했던 만큼 기대보다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비전문가인 ‘소비자의 눈’으로 고객의 소비패턴을 세밀하게 분류해 주요 혜택을 내세우고, 이용 조건도 단순화한 이른바 ‘숫자 카드’를 출시해 파란을 일으켰다. 맡은 회사마다 탁월한 경영 실적을 달성하면서 ‘미스터 해결사’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GE에서 일할 때 최 사장에 대한 평가는 ‘문제의 핵심을 파악해 해결점을 찾는 사람’이었다. 그는 가장 효율적으로 문제를 풀기 위해 최적의 인물로 팀을 꾸린다.(→최치훈 사장의 인재 용인술)
최 사장 스스로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각 분야에서 누가 가장 전문가인지를 찾아 배치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고 말한다.
실제 그는 삼성카드 사장 시절 결재판을 폐기하고 서류 한 장 내외로 보고를 간략하게 하도록 했다. 성과를 내고,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한 임직원은 과감하게 ‘발탁’해 조직에 긴장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새로운 도전 … 건설부문 구원투수로
건설 사업을 맡으면서 최 사장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국내 건설경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6년째 침체 중이다. 앞다퉈 진출한 해외 사업도 과당 경쟁에 따른 저가 수주 후유증으로 대형 건설사마저 휘청거리는 상황이다. 최 사장이 구원투수로 나섰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최 사장은 GE 재임 시절 10여년간 화력·수력·풍력발전소 핵심 운영기기 관련 업무를 맡은 경험이 있다. 중국에서 제일 큰 산샤댐 수력발전소와 타이완 원자력발전소 등을 방문하면서 직간접적으로 건설사업 현장을 체험했다. GE와 삼성전자, 삼성SDI 사장을 지내면서 글로벌 B2B(기업 간) 사업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건설업계에서는 ‘숨겨진 건설 전문가’라는 평가도 나온다.
취임 첫 해를 맞은 최 사장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안전과 컴플라이언스’(윤리·정도경영)다. 건설업은 사업 기간이 긴 ‘장기 사이클 산업’으로 고객의 신뢰와 시장의 평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안전과 컴플라이언스가 무너지면 삼성물산의 명성을 한순간에 잃을 수 있는 만큼 양보하지도, 용서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확고한 원칙주의자면서도 소통을 중시한다. CEO로서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 위해 서울 동대문디자인 플라자&파크(DDP) 등 주요 건설 현장을 자주 찾는다. 회의 같은 딱딱한 분위기보다 자연스럽게 임직원과 얘기하기를 좋아한다. 최 사장은 임직원을 만날 때마다 “저를 평범한 같은 직원이라고 생각하고 언제든지 놀러 오고 자유롭게 이메일을 보내 달라”고 말한다.
최 사장은 올해 경영전략을 ‘시장과 고객의 신뢰에 기반한 내실 있는 성장’으로 잡았다. 고객 신뢰를 바탕으로 질 좋은 프로젝트 수주를 통해 매출과 수익을 동시에 높여 장기적으로 회사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얘기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사업을 할 수 있는 진정한 글로벌 회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하는 그가 삼성물산을 어떻게 바꿔 나갈지 건설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