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투자 일단 V자 반등
4분기 6.4% 증가 '최대폭'…기계류 수입도 급증
투자심리는 여전히 '겨울'
투자증가→고용창출→소비증가의 선순환은 더 기다려야
[ 김유미 / 이상은 기자 ] ‘설비투자의 V자 반등이 시작됐다.’(이승훈 삼성증권 이코노미스트)
‘발주량이 늘었지만 경기회복 신호로는 안 보인다.’(현대중공업 관계자)
가계의 경기 바로미터가 소비라면, 기업엔 투자다. 특히 설비투자는 생산역량을 높여 경제성장에 기여할 뿐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어 소비 증가라는 선순환에 시동을 건다.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가 반등하기 위한 전제도 아직 투자에 있다는 진단이다. 하지만 기업의 체감경기가 지표를 못 따라간다는 게 문제다.
기업들 미뤘던 투자 재개
한국은행의 국내총생산(GDP) 속보치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설비투자는 전기 대비 6.4% 증가했다. 7분기 만에 최대폭인데다 3분기(1.0%)에 이어 2분기 연속 플러스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9.9% 급증하며 GDP 증가를 이끌었다. 통계청이 조사한 설비투자지수도 기계류는 작년 2분기, 운송장비는 3분기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미국을 중심으로 경기 낙관론이 흘러나오면서 여건이 미미하게나마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국내 완성차업계의 지난해 미국시장 수출액이 사상 최대치인 120억달러로 추산되는 등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이승훈 이코노미스트는 “불확실성 때문에 지난 2년 가까이 투자를 미뤘던 수출기업들이 기계류를 중심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2년 새만금 공장 증설을 중단했던 OCI는 최근 1170억원을 들여 폴리실리콘 제조설비 투자에 나섰다. 오랜 불황을 겪던 태양광 시장이 기지개를 켜면서 공장가동률은 100% 수준에 달했다. 설비투자의 선행지표가 되는 ‘설비투자조정압력’은 지난해 4분기 마이너스 행진에서 벗어났다. 설비투자조정압력은 제조업 생산증가율에서 생산능력증가율을 뺀 것으로, 이 수치가 높으면 설비투자 확대 필요성이 높다는 뜻이다.
경기훈풍 되긴 역부족
하지만 경기 상승의 전조로 읽기엔 부족하다는 분석도 있다. 윤창용 신한금융투자 이코노미스트는 “2012년 투자가 감소했기 때문에 최근 반등이 두드러져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체감 정도도 엇갈린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LNG선 등의 발주량이 늘고 선가도 조금 올랐다”며 “하지만 2008년 이전과 비교하면 너무나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은이 제조업체들의 경기판단을 종합한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지난달 76으로 지난해 10월(81) 이후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투자증가→고용창출→소비증가의 선순환은 아직 기대하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이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은 고용이 늘면 7~8개월 후 임금도 오르지만 한국은 자영업자가 많아 그 효과가 작다”고 설명했다. 임금 상승의 척도가 되는 물가상승률이 지난해 낮았던 것도 문제다. 따라서 지금처럼 미미한 투자회복세로는 소비-투자의 쌍끌이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투자가 경기 전반의 온풍이 되려면 결국 수출이 핵심이란 분석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글로벌 소비, 투자 증가세가 좀 더 확인돼야 기업들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수 있다”며 “가장 우려되는 것은 글로벌 교역증가세가 꺾일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중국 경기 둔화, 신흥국 불안 확산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경우 기업심리는 다시금 후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유미/이상은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