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총괄사업본부장
촌각 다투는 기술개발, 심사 절차에만 2년씩 걸려
"성공모델이 중요… 바이오 뛰어드는 삼성에 기대"
[ 김봉구 기자 ]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해 원격의료는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야죠. 논란이 있지만 바이오산업 입장에선 그렇게 봐요. 해외에선 지자체가 헬스케어 분야에 발 벗고 나섭니다. 웹사이트를 만들어 노인·중증질환자 건강정보를 등록해 원격의료 연결을 도울 정도예요."
판교의 코리아바이오파크에 위치한 한국바이오협회에서 만난 이승규 총괄사업본부장(53·사진)은 원격의료 논란에 대해 "통 크게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 논리로만 접근해선 곤란하다는 것. 헬스케어 분야 새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만큼 전향적으로 보자는 주문도 뒤따랐다.
그가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원격의료 허용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뒤처지면 안 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이 본부장은 "바이오 업체는 기술개발을 통해 성장하는데, 이대로 논란에 발목 잡히면 기술 선점이 불가능해진다"며 "자칫 차세대 먹거리 시장을 뺏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파이 키우는 게 우선… '동네병원 보호' 제도적 보완 필요
"지나친 사전규제로 시장을 놓치지 말고 허용 후 사후관리를 잘하자." 명료한 언어로 정리하진 않았지만 이 본부장은 바이오 기업들의 입장을 이 같이 전달했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파이를 키우는 게 우선이란 대원칙 하에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자는 주장이다.
이 본부장은 "원격의료는 바이오뿐 아니라 IT와 의료 부문이 연계되는 융합적 산업 개념"이라며 "전체적 산업의 입장에서 보면 (원격의료 허용으로) 가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길이 보인다. 한국으로 의료관광 오는 수요가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원격의료 시스템을 수출하는 것만으로도 바이오와 IT, 의료가 결합된 상당한 규모의 시장이 만들어진다. 원격의료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어떤 면에선 '국내용'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덴마크의 경우 지자체가 사이트를 개설해 시민들의 건강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했다"며 "노인이나 중증질환자의 케어가 가능해지고, 자연스레 원격의료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세계적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 본부장은 "디지털병원 같은 유비쿼터스 헬스도 원격의료의 일종으로 대형병원 입장에서도 해외시장 파이를 키울 수 있다"며 "해외시장을 개척한다는 게 단순히 외국에 병원 건물 짓는 게 아니라 디지털병원 시스템 전부를 수출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에는 제도적 보완을 당부했다. 그는 "원격의료 도입을 강하게 반대하는 동네병원의 수익을 일정 수준 보장해주면 큰 파열음 없이 진행되지 않을까 한다"며 "지금도 바이오 분야 공동 연구·개발(R&D)이나 바이오벤처 기술평가 등에 병원과 의사들이 적극 들어오는 구조이기 때문에, 접근법만 좀 다르게 가면 충분히 풀릴 수 있는 사안"이라고 전망했다.
◆ "R&D, 기술연속성이 생명"… 규제·검토 중복 과감히 생략
"예를 들어 기술을 개발해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평가 절차를 마치기까지 무려 2년이 걸린다. 2년이면 기업의 생명줄이 왔다갔다 하는 시간이다. 특히 바이오 분야 기술은 더 그렇다. 그런데 두 번씩 중복심사와 평가를 받으면 기업은 아주 힘들어진다. 너무 큰 걸림돌이다."
이 본부장은 여러 분야에 걸친 중복규제와 검토는 과감히 생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바이오 분야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한다고 하면 현장의 애로점부터 해결해줘야 산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는 "지자체와 바이오 업체, IT 기업이 손을 잡고 스마트케어 시스템을 개발하는 작업을 진행한 적 있다"며 "그런데 원격의료의 개인정보 회람 부분이 관련법에 걸린다고 해서 잡음을 빚다가 결국 사업 자체가 무산됐다"고 귀띔했다.
이 본부장은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이 문제가 됐다 해서 카드를 안 쓰고 현금 결제만 할 순 없지 않느냐"며 "문제 해결 과정에서 '안 되는' 방향으로만 자꾸 틀어버리니 시장과 산업 자체가 크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서로 다른 산업들이 접목해 가는 기술 문제라 법적 검토가 있어야 하는데, 중복규제나 중복검토에 의해 시간이 많이 걸리는 부분을 정부가 좀 더 세밀하게 봐 달라"고 주문했다.
스스로도 창업 경험이 있는 이 본부장은 "바이오는 기술연속성이 생명"이라며 "현실적으로 자금 투자 시스템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창업해 신약 개발 임상 초반 단계까지만 가는 데도 약 40억~50억 원이 필요한데 시장에서 기술평가를 통해 투자 받다보니 손실이 생기면 당장 자금 확보가 어려워진다"며 "성과가 곧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오 분야의 특성상 생기는 '시간차'를 버틸 수 있도록 정부가 창업 자금부터 R&D까지 좀 더 과감하게 투자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 신약개발 1조까지 투자 '체력' 있어야… 삼성에 역할 기대
IT 하면 곧바로 스마트폰이 떠오른다. 일상생활에 깊숙이 들어온 대표 브랜드가 있는 것이다. 반면 바이오 분야는 피부에 와 닿는 간판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 본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모델이 중요하다. IT는 스마트폰이나 PC, TV 등이 바로 연상되지 않나. 거기 비하면 바이오 분야는 설명이 어렵다. 개념도 그렇고, 확 잡히는 게 없어서 그렇다. 그러다 보니 투자받기도 쉽지 않다. 바이오기업 사장단 모임에서도 빨리 성공모델을 만들자고 얘기하곤 한다."
이 때문에 '신수종사업'을 천명하고 바이오 분야에 뛰어든 삼성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 본부장은 "제대로 된 신약 개발을 통해 획기적 성과를 내려면 R&D에 5000억~1조 원을 투입할 수 있고, 프로젝트가 실패하더라도 버텨내는 체력이 필요하다"며 "삼성이 반도체와 핸드폰 등 IT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했듯 바이오 분야에도 공격적으로 투자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체력'은 아직 일천하다. 최근 신약 R&D 투자가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해외 거대 제약사가 투자하는 블록버스터 신약에 비하면 저예산 독립영화 수준이다. 지난해 한미약품이 상장 제약사 가운데 최초로 연간 R&D 투자 1000억 원을 돌파한 게 단적인 예다.
이 본부장은 "바이오벤처가 발전하려면 블록버스터급 R&D를 끌고 갈 탄탄한 기업이 몇 개 생겨서 산업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논란은 차치하고 업계에 큰 영향을 끼친 셀트리온이나 기술이전?특허에 강점이 있는 메디톡스 같은 회사들이 치고 나가고, 삼성도 적극 투자하면서 산업 자체가 업그레이드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남=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사진= 변성현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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