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전세의 종언

입력 2014-02-11 20:28
수정 2014-02-12 04:27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주택거래가 좀 살아나는 모양이다. 지난달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 4800건을 넘어섰는데 1년 전의 4배라고 한다. 일부 견본주택에는 수만명이 몰려들기도 한다는 소식이다. 정부가 수도 없이 쏟아낸 부동산 대책이 효과를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많다. 전세가격이 너무 오르다 보니 세입자의 상당수가 차라리 집을 사기로 하면서 거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최근 전세가율은 60%를 넘어선 지 오래고 서울과 수도권에는 70% 안팎인 곳도 속출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4분기 수도권에서 거래가 많았던 100개 단지 중 서울과 경기도에서 팔린 아파트의 평균 전세가율은 각각 70.6%, 68.1%였다. 거래가 늘어난 이유가 부동산 경기 회복보다는 전셋값 고공행진에 있다는 얘기다.

주택거래가 늘어난 진짜 이유가 무엇이든 주택시장에 상당한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자가보유, 전세, 월세라는 세 가지 주거형태에서 전세가 자가보유와 월세 양쪽으로 흡수되는 과정인 것이다. 어차피 월세가 주택임대의 대세가 된다면 부동산 정책의 초점도 무조건 경기 부양보다는 월세에 좀 더 맞춰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월세 전환시 가장 큰 이슈는 역시 세입자 부담증가다. 보증금에 월세까지 더하면 전세보다 비용이 늘 수밖에 없다.

전세가 없는 외국에는 세입자 부담을 덜기 위한 다양한 월세 제도가 발달해 있다. 우선 보증금이 거의 없는 대신 보증회사를 통해 보증을 받는 제도가 정착돼 있는 경우가 많다. 공공임대 비율이 높은 것도 특징이다. 유럽의 경우 대부분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전체 임대주택의 절반을 넘는다. 일본 캐나다 호주의 공공임대 비율도 15% 전후로 상대적으로 낮지만 한국(10%)보다는 높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월세 접근 방식은 좀 특이해 보인다. ‘전세보증금 인상→가계대출 증가→가처분소득 감소→내수 침체’라는 도식을 정해놓고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월세로 갈아탄 소비자들이 여윳돈이 생겨 소비를 늘릴 것이라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주장도 펴고 있다. IMF가 “전세 제도는 금융권에 구조적인 위험 요인이 될 수 있으니 월세로 바꾸라”며 우리 정부를 두둔했다는 보도도 있다.

한국 정부에 등을 떠밀린 IMF가 충고하지 않아도 전세는 어차피 운명을 다해가고 있다. 정부는 이상한 경기부양론을 내세우기보다는 월세 세입자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정책부터 찾는 게 순서 아닌지 모르겠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