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의 거울'…닮아가는 삼성·현대차

입력 2014-02-10 21:29
수정 2014-02-11 04:01
긴장의 끈 못놓게…'수시 인사' 이건희 회장
계열사 내부경쟁…'메기' 푸는 정몽구 회장


[ 이태명 기자 ]
현대자동차그룹은 올 상반기 출시 예정인 신형 쏘나타(LF)에 들어갈 변속기 생산을 현대다이모스에 맡겼다. 지금껏 승용차용 변속기 생산을 맡아온 현대파워텍과 현대위아 대신 상용차용 변속기를 주로 만들던 현대다이모스에 주력 모델인 신형 쏘나타의 심장부 제작을 맡긴 것.

재계에선 정몽구 회장식(式) 메기 경영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2000년대 초·중반 이건희 삼성 회장이 주요 부품을 2~3개 계열사에 중복으로 맡겨 치열한 내부 경쟁을 유도한 것과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정몽구 회장의 ‘메기론’

10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내달 중순 출시 예정인 쏘나타LF에는 ‘듀얼 클러치 트랜스미션(DCT)’이란 변속기가 장착된다. DCT는 수동변속기에 자동변속 기능을 추가한 차세대 변속기다. 연료효율이 높아 유럽 자동차업체들이 많이 채택하고 있다. 이 쏘나타LF용 변속기는 현대다이모스가 만든다. 이를 위해 현대다이모스는 작년 말 충남 서산에 연 40만대 분량의 승용차용 DCT 변속기 양산라인을 지었다.

업계에선 신형 쏘나타 변속기 제조업체가 왜 현대다이모스로 정해졌는지가 큰 관심이다. 현대차그룹에는 변속기를 만드는 계열사가 모두 세 곳이다. 현대파워텍은 승용차용 자동변속기(CVT)를, 현대위아는 승용차용 수동변속기를 각각 생산한다.

현대다이모스는 상용차용 수동변속기를 주로 만들고 승용차용 변속기는 2011년 벨로스터 변속기를 일부 만들었을 뿐이다. 2012년 9월 현대모비스의 중국 베이징 변속기 공장을 넘겨받아 중국 현지 승용차용 변속기를 생산하고 있지만 여전히 상용차용 변속기 중심의 사업구조를 갖추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DCT 변속기는 현대파워텍이 만드는 자동변속기와 달리 수동변속기를 토대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현대다이모스에 맡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대파워텍이 그룹 내 승용차 변속기 대표주자 격이고, 현대위아도 수년 전부터 DCT 변속기를 개발 중이라는 점에서 다른 해석도 나온다. 변속기 분야의 내부 경쟁을 유도해 기술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 경우 이건희 삼성 회장의 ‘메기론’과 상당히 닮았다. 이 회장은 2000년대 초반 내부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2~3개 계열사에 똑같은 사업을 맡겼다.

휴대폰에 쓰이는 카메라 모듈이 대표적이다. 2000년대 초반 삼성전기와 옛 삼성광통신이 하고 있던 카메라 모듈 사업에 삼성테크윈이 뛰어들어 치열한 내부 경쟁을 벌였다. 2004년에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두고 삼성전자와 삼성SDI가 동시에 사업을 추진해 2007년까지 내부 기술주도권 다툼을 벌였다.


○닮아가는 대한민국 ‘투톱’ 그룹

재계에선 ‘메기론’처럼 삼성과 현대차가 서로 비슷한 경영기법을 택하는 데 주목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양대 간판그룹이 서로 닮아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란 점에서다.

인사 방식도 유사점이 많아졌다. 2010년까지 삼성과 현대차 총수들의 인사 스타일은 극명하게 갈렸으나, 최근엔 ‘수시 인사’라는 공통분모가 생겼다.

현대차그룹 정 회장은 원래부터 정해진 시기 없이 수시로 사장단을 교체해왔다. 작년 11월에는 권문식 현대차 연구개발본부 사장을 전격 경질했다. 올들어서도 지난달 현대차 미국판매법인 사장에 이어 지난 7일 현대차 상용차사업 총괄을 교체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정 회장의 인사가 갑작스러워 보이지만, 충분한 검토와 오랜 고민 끝에 내리는 결정”이라며 “느슨해질 수 있는 조직 내 긴장감을 불어넣는 효과도 있다”고 전했다.

이에 비해 이 회장은 매년 연말연초 정해진 시기에 사장단 인사를 실시해왔다. 그런데 2011년부터 인사스타일을 확 바꿨다. 그해 6월 삼성테크윈 사장을 전격 경질한 것을 계기로 정기 인사철이 아닌 때에도 수시로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작년 8월에는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을 전격 교체했다.

삼성 관계자는 “내부 비리나 사고 등 귀책 사유가 있는 CEO를 교체한 것이지 수시인사를 한다고 할 수는 없다”면서도 “예전과 달리 불시에 인사가 나기 때문에 조직 내 긴장감은 확실히 높아졌다”고 귀띔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