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후보는 탈탈 털면서…"의원 납세 실적은 공개 못해"

입력 2014-02-10 20:47
수정 2014-02-11 04:30
뉴스 & 분석 - '정부 3.0시대'… 한경, 국회에 정보공개 청구해 보니

"개인정보라 비공개 대상"
"공개해야" 이의신청 하자 국세기본법 내세우며 거부


[ 이호기 기자 ] “국회의원의 소득세 납부 실적은 비공개 대상 정보다.”

국회는 최근 한국경제신문이 낸 정보공개 신청에 대해 이같이 답변했다. 이에 불복해 이의신청까지 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국무총리, 장관, 대법관 등 고위 공직자의 인사청문회 때마다 해당 후보자는 물론 배우자, 자녀, 친인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과세 정보를 제출받아 샅샅이 파헤쳤던 의원들이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개인정보’라는 이중잣대를 들이댄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점 추진하고 있는 ‘정부 3.0’(공공 정보의 민간 공개를 통한 행정 투명성 확대)의 정신과도 맞지 않는다.

본지는 지난달 15일 국회 정보공개시스템을 통해 최근 5년간 국회의원 300명에 대해 의원별 소득세 납부액과 세액 산출 근거 등의 자료를 요구했다. 일반 국민에게 자신의 대표인 의원들이 그동안 얼마나 성실하게 세금을 냈는지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점에서 ‘정보공개 청구’를 활용하기로 했다.

약 2주 뒤 국회사무처는 ‘국회 정보공개규정’상 ‘비공개 정보’라는 첫 답변을 내놨다. 이름·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곧바로 이의신청을 했다. 국회의원은 헌법상 장관 등 국무위원보다 상위 기관으로, 그 소득의 주된 원천이 국민의 세금이며 이미 인적 사항 및 재산 내역 등도 공개돼 있으므로 소득세 납부 실적을 개인정보로 볼 근거가 미약하다는 취지였다. 당초부터 주민등록번호는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자 국회사무처는 며칠 뒤 정진석 사무총장 명의의 공문을 보내왔다. ‘비공개 정보’라는 결론은 같았다. 그러나 이번엔 근거 법률로 국회 정보공개 규정이 아닌 ‘국세기본법’을 들었다.

사무처는 “국회의원의 소득세 납부 실적은 국세기본법에 따른 ‘납세자가 제출하거나 부과 징수를 위해 업무상 취득한 자료’”라며 “이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상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서 비공개 사항으로 규정된 정보”라고 밝혔다.

이처럼 근거법이 달라진 것과 관련해 국회가 먼저 비공개 방침을 내려놓은 뒤 ‘명분’을 찾으려 했다는 의혹이 나올 법하다. 국회사무처 측은 이에 대해 “그렇게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답변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공인인 국회의원을 일반 납세자와 동등하게 봐야 하는지도 논란거리다. 국세기본법은 납세자의 과세 정보가 누설될 경우 △개인 신상에 대한 비밀보장 훼손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업무상 지장 발생 △과세 업무의 공정성 저해 △공익에 심대한 영향 초래 등 문제가 있으므로 과세당국 및 담당 공무원에게 비밀유지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인사청문회 때마다 장관 등 후보자에게 ‘그동안 세금 제대로 안 냈다’고 호통치던 의원들이 정작 자신이 매년 세금을 얼마나 내고 있는지는 꼭꼭 감춰두고 있다”며 “입만 열면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의원들이 이런 것부터 실천해야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