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휴대폰 유통법, 소비자가 먼저다

입력 2014-02-09 20:30
수정 2014-02-10 04:24
이호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장상황 무시한 일괄 가격통제
사업자간 담합기회 제공할 우려
정책은 소비자편익 초점 맞춰야


이동통신업체뿐만 아니라 단말기 제조업체까지 규제대상에 포함시 키는 ‘이동통신단말기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말기 유통법)’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이 법안은 일부 소비자가 다른 소비자에 비해 많은 보조금을 받아서 단말기를 싸게 구입하는 현상에 대한 대중들의 심리적 불편함과 경쟁판도에는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 보조금 지출을 줄이려는 이동통신사업자의 욕구에서 촉발됐다.

보조금을 억제하기 위해 생각할 수 있는 사실상 모든 규제수단을 담고 있다. 그런데 단말기 보조금의 본질이 이동통신사업자가 자사 제품의 판촉을 위해 가격을 할인해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된다.

한국 이동통신시장은 하나의 지배적 사업자와 현격한 격차가 있는 두 후발 사업자에 의한 과점이 고착화된 구조다. 그나마 제한적인 경쟁이 주로 새 휴대폰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보조금을 지나치게 억제하는 것은 중요한 경쟁수단이 상실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동통신시장 정책은 소비자 후생을 극대화하는 데 궁극적인 목표를 둬야 한다. 단말기 유통법이 시행되면 소비자에게 주어지는 보조금이 크게 감소하게 된다. 줄어드는 사업자 판촉비용이 중장기적으로 소비자후생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따라서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키지 않으면서도 과도한 보조금을 억제해 통신요금 수준을 낮출 수 있는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재판매제도나 단말기자급제, 단말기구매비용과 서비스요금의 구분 표시 등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속적으로 시행할 경우 상당한 효과가 기대된다.

이에 반해 법안에 담겨 있는 보조금 차별금지는 표면적으로 각국 통신법상 이용자차별의 법리와 비슷하지만 취지가 전혀 다르다. 선진국의 통신법상 이용자차별의 법리는 독점적 통신사업자의 착취적 행위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반해 단말기 유통법의 차별금지는 오히려 사업자 간 경쟁을 억제하려는 취지다. 법안은 또 이동통신사업자들의 단말기보조금을 세부적으로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사업자 간 묵시적 담합의 기준을 제공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단말기 유통법이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미 왜곡돼 있는 국내 이동통신시장의 문제를 유통시장 등 인접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단말기 제조업체에 대해 영업상의 정보제공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법리적으로 정당화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 사업자 경쟁활동을 규제하는 규제기관이 법위반 혐의가 있는 경우에 조사·제재할 권한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혐의가 없음에도 일상적으로 영업 정보를 제공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통신, 전력, 수도 등 모든 국민에게 필수적인 서비스로서 광범위한 규제가 필요한 소위 ‘규제산업’의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 다른 영역에서 이뤄질 경우엔 기업활동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개입으로서 헌법상 경제질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보조금 규제는 수차례 시도됐으나 결국 제재와 법위반이 반복돼 실패했다. 보조금 지급은 거래당사자의 자발적인 행위이므로 이를 인위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결국 제도와 시장현실의 괴리를 키울 뿐이다. 물론 정부로서는 시장에서 나타나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지만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 위해 직접적인 규제를 마련하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직접적 규제는 가장 손쉬운 것이지만, 그에 따른 막대한 사회적 비용은 우리 사회 전체가 두고두고 부담해야 한다.

이호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