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자산운용 존 리 사장 "제2의 삼성전자 발굴해 한국 최고 '명품펀드' 만들 것"

입력 2014-02-07 06:57
Cover Story - 메리츠종금증권

주식 매매 시점 중요하지 않아
경쟁력 있는 기업 발굴해 매주 매달 투자하는 것이 정답

변화 두려워하지 않는 한국, 日처럼 장기침체 빠지지 않을 것

직원들이 떠나지 않는 회사가 투자자들에게 신뢰 줄 수 있어


[ 심은지 기자 ]
메리츠자산운용은 메리츠종금증권의 ‘짝꿍 계열사’다. 메리츠금융그룹 내에서 주식시장의 변화를 이끄는 두 축이기도 하지만 똑같은 기업문화와 투자철학을 공유하고 있어서다. 이런 회사에 미국에서 오랜 펀드매니저 경력을 쌓은 존 리 사장(56)이 작년 12월 취임해 메리츠종금증권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지 주목된다.

존 리 사장은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이미 메리츠 안에 성공 DNA가 있다고 했다. 그는 “메리츠는 수평적인 조직과 자유로운 소통문화를 갖고 있다”며 “이런 기업문화를 갖췄기 때문에 직원도 웃고, 고객도 웃을 수 있는 상품을 선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월가에서 15억달러 규모의 ‘코리아펀드’를 운용했던 그가 글로벌 운용사 라자드자산운용에서 국내 중소형사인 메리츠로 자리를 옮긴 이유다.

존 리 사장은 1990년대 삼성화재, SK텔레콤 등 저평가 주식을 사들여 미국 월가에 ‘코리아열풍’을 일으켰다. 국내에선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GF), 일명 ‘장하성 펀드’를 운용한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유명하다.

지난 3일 서울 계동 메리츠자산운용 본사에서 만난 그는 “한국은 아직도 변화와 역동성이 넘치는 시장”이라며 “제2의 삼성전자, 포스코 등을 발굴해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펀드’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새해 계획은 무엇입니까.

“역시 메리츠코리아펀드를 대한민국 ‘1등 펀드’로 만드는 겁니다. 메리츠자산운용 사장으로 취임한 뒤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곤 메리츠코리아펀드 이외의 펀드는 모두 청산 중입니다. 한국은 ‘펀드 수가 세계 1위’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국내 운용사들이 너무 많은 펀드를 운용하고 있지요. 펀드 수를 줄이고 펀드 하나에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메리츠코리아펀드가 국내 투자가들이 가장 신뢰하는 ‘명품펀드’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명품펀드’를 어떻게 만들죠.

“좋은 종목에 장기투자하면 됩니다. 너무 쉬운 답변인가요? 하지만 투자철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미국 스커더인베스트먼트에서 1991년부터 ‘코리아펀드’를 운용했는데, 몇 개 종목은 2006년까지 한 주도 팔지 않았습니다. 15년 동안 ‘코리아펀드’의 거래회전율은 10% 정도였습니다. 1년 동안 펀드 자산 중 주식을 사고판 금액이 10%란 의미죠. 한번 담은 주식은 10년 이상 보유하다는 뜻입니다. 고객들과 장기투자에 대한 신뢰를 공유해나갈 겁니다. 고객들의 신뢰가 쌓이면 저절로 성공하게 돼 있습니다.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테이퍼링 충격파가 큽니다. 지금 주식을 사도 될까요.

“언제 주식을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가장 호황을 보인 주식시장은 그리스였습니다. 위기론이 대두됐던 나라죠. 이처럼 주식시장에는 항상 위기가 오고, 기회도 옵니다. 단기간에 주가가 오를지, 떨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따라서 이슈에 따라 주식매매 시점을 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좋은 기업을 발굴해 매달, 매주 투자하는 게 정답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등 여러 위기 속에서도 좋은 기업은 살아남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위기가 닥쳐오든 좋은 기업은 성장할 겁니다. 그런 기업을 발굴하는 게 타이밍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대박’ 종목을 어떻게 고릅니까.

“특별한 노하우는 없습니다. 기업을 분석하고, 공장을 방문하고, 경영자를 만나면 됩니다. 부지런히 발로 뛰다 보면 좋은 기업을 발굴할 수 있죠. 업종에 대해선 편견 없이 분석합니다. 제조업이든, 정보기술(IT)이든 그 업계에서 경쟁력을 가진 기업들이 있으니깐요. 한국에는 상대적으로 IT 관련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춘 경우가 많긴 합니다. 하지만 IT기업에 국한해 종목을 찾지는 않습니다.”

▷개인투자자들에게 조언한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스타벅스 커피 한 잔 값이라도 꾸준히 주식을 사라고 자주 조언합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여유자금이 생길 때마다 무조건 주식을 사야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월급)만으로는 미래를 준비하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자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자본가가 돼야 합니다. 지금 당장 월급의 10%라도 주식에 투자하세요.”

▷한국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질 위험이 있나요.

“한국은 일본과 달리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1990년대 일본은 구조조정을 게을리했고, 아직도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인식이 한국보다는 후진적인 면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변화를 즐깁니다. 세계에서 한국 사람들처럼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가 높은 민족이 없어요. 미국 동포 사회를 보더라도 세탁소 주인이 자식들은 하버드대에 보냅니다. 미국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얘기죠. 요즘 한국 학생들을 만나보면 벤처사업가, 한류스타 등 새로운 성공을 꿈꿉니다. 10년 후 한국경제가 밝은 이유입니다.”

▷미국 법인을 설립한다고 들었습니다.

“다양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입니다. 해외투자자들이 한국에 직접 투자하는 경우는 아직 드뭅니다. 미국처럼 돈이 많은 나라에서 한국시장에 대한 직접투자가 미흡하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한국경제에 대해 아주 낙관하고 있습니다. 연내 미국 법인을 설립해 세계 많은 투자자들에게 한국 주식을 권할 생각입니다.”

▷최고경영자(CEO)로서 목표가 있다면.

“메리츠만의 문화를 구축하는 데 많이 노력할 겁니다. 메리츠자산운용을 스커더와 같은 회사로 만들고 싶습니다. 스커더의 장점 중 하나는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는 문화입니다. 20~30년간 일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국은 펀드매니저가 1~2년 새 교체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더라고요. 메리츠자산운용을 가장 들어오고 싶은 회사, 가장 오래 근무하는 회사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야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자주 바뀌는 펀드매니저에게 자신의 재산을 맡기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