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 '어닝쇼크'
출렁이는 유가·환율 직격탄…비싸게 원유 사와 정제해 팔땐 휘발유값 하락 악순환 사이클
석유화학·윤활유로 돌파구 찾기…시노펙 등 中업체와 합작 강화
[ 박해영 기자 ]
SK그룹의 주력인 석유사업을 총괄하는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4분기 1년 반 만에 적자를 내는 수모를 당했다. 정유 부문이 유가 하락과 원화가치 상승, 정제마진 축소 등 ‘3각 파도’에 휩쓸린 결과다.
통신·반도체와 함께 SK의 양대 축을 이루는 석유부문은 과거 안정적인 이익을 내며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당분간 업황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위기 타개를 위해 SK는 정유사업 대신 에틸렌과 파라자일렌(PX) 등 석유화학 사업을 대폭 강화할 계획이다.
◆1년 반 만에 적자전환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 251억원, 순손실 843억원을 기록했다고 4일 발표했다. 전 분기(3160억원)보다는 못하겠지만 최소 수백억원대 영업이익은 가능할 것으로 봤던 시장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사업을 하는 SK에너지·SK인천석유화학·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그리고 합성수지 원료를 만드는 SK종합화학, 윤활유 부문의 SK루브리컨츠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분기 기준으로 SK이노베이션이 영업적자를 낸 것은 2012년 2분기(1028억원) 이후 처음이다. 지난 분기 SK종합화학(1599억원)과 SK루브리컨츠(562억원)는 영업이익을 냈지만 SK에너지는 정유업에서 3098억원의 영업손실을 입었다.
연간 기준으로도 실적이 악화됐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매출 66조6747억원, 영업이익 1조3818억원, 당기순이익 757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9.1%와 18.7% 감소했다.
정유사는 국제유가와 달러가치가 동시에 완만하게 오를 때 이익이 늘어난다. 정유사가 들여온 원유를 정제해 석유제품을 판매하는 데 통상 2개월 안팎이 걸린다. 유가와 달러화가 서서히 오르면 정유사로서는 싼 값에 원료를 들여와 비싼 값에 기름을 팔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정유업계는 유가와 달러가치가 동시에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겪었다. 작년 8월 배럴당 112달러였던 두바이유는 연말 107달러까지, 원·달러 환율은 6월 말 1163원에서 연말 1045원까지 각각 하락했다. 이 때문에 비싸게 구입한 원유를 정제한 후 팔 때가 되면 휘발유 값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장우석 SK에너지 경영기획실장은 “4분기 유가와 환율하락으로 2000억원가량의 재고자산 평가손실까지 났다”고 설명했다.
◆석유화학·윤활유로 돌파구
전문가들은 올해도 정유사업 전망이 밝지 않은 것으로 내다봤다. 양정훈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정유업은 1분기가 성수기인데 최근 유가하락세와 정제마진 등을 감안하면 올해는 이런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분기 SK이노베이션의 영업이익은 6958억원으로 연간 영업이익의 50.3%를 차지했다.
SK는 정유업황 회복이 더딜 것이란 판단에 따라 석유화학과 윤활유 등 정유 이외 사업을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특히 중국에서의 석유화학 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SK종합화학이 중국 최대 석유회사인 시노펙과 우한에 건설한 나프타분해설비는 지난달 상업생산을 시작했다. 이 공장은 합성수지와 합성섬유 등의 기초원료인 에틸렌,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등을 연간 총 250만t 생산할 예정이다.
SK종합화학이 닝보화공과 손잡고 닝보에 건설중인 연간 5만t 규모의 고기능성 합성고무(EPMD) 공장도 연내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SK는 중국의 EPMD 자급률이 13%에 불과해 이 공장을 발판으로 중국 합성고무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스페인 기업 렙솔과 현지에서 건설 중인 윤활기유 공장도 올 하반기 가동을 시작하면 실적 개선에 힘을 보탤 것으로 SK는 기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투자에 대해선 작년 2조8000억원보다 줄어든 2조원대 초반을 예상했다. 또 해외 자산 매입과 관련된 M&A에 대해선 “가스보다는 석유 쪽 비중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