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골드미스 치명적 사랑…숨겨진 열정 꺼내 풀어냈죠

입력 2014-02-03 20:37
수정 2014-02-04 04:11
13일 개봉 '관능의 법칙'서 열연한 엄정화


[ 유재혁 기자 ] 엄정화(45)는 충무로의 주연급 여배우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골드미스’다. 그는 40대 세 여자의 사랑과 일을 다룬 권칠인 감독의 새 영화 ‘관능의 법칙’(13일 개봉)에서도 현실에서처럼 골드미스로 등장한다. 한국판 ‘섹스 앤 더 시티’를 표방한 이 영화에서 조카뻘 신입사원과 관계를 맺고 혼란에 빠지는 베테랑 프로듀서 역할을 해냈다. 2003년 히트작 ‘싱글즈’에서 사랑의 환상과 결혼의 현실 사이에서 방황했던 그녀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미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3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싱글즈’에 출연할 당시에는 여자가 서른 살만 돼도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30대와는 무게감이 달랐죠. 그런데 지금 30대를 보면 너무 풋풋해요, 호호. 예전에는 40대가 되면 인생을 거의 포기해야 할 시점이라고 여겼지만 지금은 40대가 한창 일할 때잖아요. 급변하는 시대에 저희 세대가 맨 앞에 서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생각과 환경이 더 바뀔 거예요.”

그는 ‘싱글즈’와 ‘관능의 법칙’ 여주인공 사이에는 10여년의 나이차가 있지만 사랑을 꿈꾸는 것은 같다고 지적했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설레고, 바보짓 하기는 마찬가지예요. 사랑에 빠지면 여자는 누구나 소녀 같아지나봐요. 다만 40대가 되니까 좀 더 명확해져요. 가령 ‘싱글즈’에서는 임신을 한 뒤 결혼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에서 분명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거예요.”

극중 그녀는 조카뻘 연하남과 우연히 관계를 맺은 뒤 서로의 앞날을 생각해 단호히 절교를 선언한다. 물론 진심이 아니다. 연하남도 그녀의 속내를 꿰뚫는다. 실생활에서도 그녀는 인생의 선배로서 여자가 남자를 리드해 사는 것이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예전 사람처럼 ‘나이에 맞게 살아야지’하는 생각은 멋이 없어요.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란 마인드가 중요해요. 저도 예전에 나이 먹는 것에 집착했던 게 안타까워요. 이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저 나이에도 사랑이 존재하는구나’라며 안도했으면 좋겠어요.”

1993년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서 처음 주연한 이후 충무로에서 20년 동안이나 정상을 유지하는 비결을 물었다.

“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운을 타고났다고 생각해요. 제게 일이 주어지면 늘 열심히 했어요. 하지만 누구나 열심히 하잖아요. 저는 모든 일을 재미있게 즐기려고 해요. 힘든 부분도, 아픈 부분도 즐기며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는 데뷔 초기 경쟁자들보다 더디게 올라가는 데 속을 끓였다. 첫 주연작이 흥행에 실패한 뒤 시나리오가 한동안 끊어졌다. 그 무렵 “천천히 (정상에) 올라가서 천천히 내려오라”고 한 어머니의 말이 큰 힘이 됐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한 계단씩 올라온 느낌이에요. 신비로운 것은 제가 꿈꾸던 시간이 항상 (언젠가는) 온다는 거예요.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앞으로는 누구나 알 만한 대표작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날도 올 거예요.”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