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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제희 < 대동풍수지리학회장 >
경복궁은 약 230년간 조선의 정궁이었지만 크고작은 변란으로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그것은 궁궐이 자리한 터와 주변의 산천지세가 풍수적으로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임진왜란 후 폐허가 된 경복궁을 그대로 방치한 채 창덕궁을 재건해 궁궐로 삼은 것은 주산인 북악산이 바위가 드러난 석산이라 경복궁 터가 길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나와서였다. 풍수에선 장풍을 중시해 사방에서 산들이 잘 감싸 생기를 보호하는 곳이 길지로 여겨진다. 땅에 응집된 지기는 바람을 맞으면 흩어진다.
한양은 북악산, 인왕산, 남산 등이 사면을 에워싸고 있다. 그러나 청룡인 동쪽의 낙산이 낮고 인왕산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남서방의 백호도 낮아 산세를 쫓아 성을 쌓아도 진방(震方·동쪽)과 곤방(坤方·남서방)의 성곽이 낮은 형세다. 낙산이 낮은 이유는 사대문 안에서 생긴 바람과 물이 그 방위로 모두 빠져나가니 태초에 있던 산들이 깎여나간 결과다. 남서방은 인왕산에서 남진한 산줄기가 남산으로 솟기 전 스스로 몸을 낮추고 움츠렸다.
지대가 낮은 곳을 허(虛)라 불러 그곳에는 사람들이 왕래하는 대문을 설치했다. 흥인지문을 도성의 수구인 동쪽에 두고 숭례문을 고개가 낮은 남서방에 지은 까닭이다. 그런데 허한 곳은 외적이 침범하기도 쉬워 한양은 당초부터 두 방위로 외적의 침입을 받을 운명이었다. 임진왜란 때 흥인지문을 통해 들어온 왜군에 의해 도성이 함락됐고, 병자호란 때에는 숭례문으로 진격한 청군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유린당했다. 이는 한양의 지세적 약점과도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도성의 대문은 역법의 팔괘를 본떠 정도전이 이름을 붙였다. 숭례문(崇禮門)의 ‘예(禮)’는 오행이 ‘화(火)’이고 방위는 ‘남(南)’을 나타낸다. 그런데 성문에는 글자를 세로로 써 달았다. 이것은 ‘崇禮’의 두 글자를 세로로 겹치면 불꽃이 타오르는 형상이 되므로 관악산의 화기를 풍수 화염으로 누르고자 한 것이다. 결국 숭례문이 남문으로써 제 역할을 다해야 나라를 재난으로부터 보호하고 서쪽에 위치한 중국의 정치·경제적 침입도 막아낼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외세의 침략과 6·25 전쟁의 혼란 속에도 끄떡없던 숭례문이 2008년 한 노인의 방화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것은 충격이었다. 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웅장하고 당당한 옛 모습을 되찾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다. 또 최근에는 숭례문 복원에 쓰인 목재를 놓고 의혹과 논란도 일파만파 퍼져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나이테가 조밀하고 송진이 가득 차 쉽게 썩지 않고 잘 갈라지지 않는 금강송 대신 러시아산 소나무가 일부 사용됐다는 의혹이다.
숭례문은 국보 1호의 문화재로만 치부할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미래 한국의 국운 융성을 담당할 한국인의 정신적 대들보로 대접해야 한다.
고제희 < 대동풍수지리학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