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스위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식품기업 네슬레와 커피믹스 합작비지니스를 어제 2014년 1월 27일 전격 발표했습니다.이날 발표한 내용은 롯데그룹의 식품제조 계열사 롯데푸드 (옛 롯데삼강)가 한국네슬레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500억원 규모의 이 회사 지분 50%를 확보한다는 게 핵심입니다.
다시 말해 롯데와 네슬레는 50 대 50의 비율로 자본금 1000억원 규모의 새 회사 ‘롯데네슬레코리아’를 설립해 네슬레 청주공장을 운영하게 된다는 겁니다. 최고경영자(CEO)는 롯데측에서, 재무최고책임자는 네슬레측이 맡는다는 게 합작 계약의 골자로 불립니다.
합작회사는 이를 통해 1조2000억원대 규모로 평가되며 동서식품이 거의 독점적인 점유율 (AC닐슨 조사 81.2%)을 보이는 커피믹스 시장에서 판도를 한 번 바꿔보겠다는 포석이고요.그러나 양사의 합작사가 국내 커피 시장에서 연착륙 할지 여부에 대해선 긍정과 부정이 서로 엇갈립니다.
롯데와 손잡은 네슬레는 연매출 규모가 150조원에 달하고 세계 커피 시장에서는 1위로 큰 소리 치지만 국내에선 그야말로 ‘체면 구기는’ 상황입니다.국내 커피믹스 시장 점유율은 바닥 수준인 3.7%에 머물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사보다 후발주자이면서 지난해 2013년 ‘대리점 갑을사태’로 곤경에 처한 남양유업(점유율 12.6%)에도 뒤쳐진 형편입니다. 당연히 영업적자를 면치 못하는 (2011년 2012년 연속 적자)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요.
때문에 네슬레는 국내 커피 시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스위스 방문 중 연설에서 ‘대박’이라고 표현하고 ‘Breakthrough’로 영어 번역한 ‘돌파구’ 마련이 절실한 시점으로 평가됐습니다.
국내 커피믹스 시장에서 롯데의 처지도 네슬레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롯데칠성음료가 이 시장에 참여하고 있지만 네슬레 보다 더 밑바닥을 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시장점유율은 1% 남짓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네슬레와 롯데의 이번 합작을 두고 업계에서 “밑바닥들의 동맹”이라는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시선도 만만찮습니다. 이번 합작이 파트너의 취약점을 서로 보완하는 ‘절묘한 결합’이라는 얘긴데요.
업계 한 관계자는 “네슬레의 커피믹스 제조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 롯데의 마케팅과 유통능력이 잘 합쳐진다면 이른 시간 내 ‘시장 파괴력’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합니다. 시너지 높은 ‘동맹’이 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합작 성사의 귀추가 주목되는 부문인 셈입니다.
롯데는 이번에 네슬레와 커피믹스 합작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경영방식을 다시 한번 재계에 보여주었습니다. 그룹 계열사 간 똑 같은 비즈니스의 시장 경쟁(일종의 중복투자)을 막지 않는 게 바로 그것인데요.이는 롯데 창업자인 신격호 회장의 “수익낼 수 있으면 계열사 간 경쟁도 나쁘지 않다”는 경영철학에서 비롯했다는 업계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국내 커피믹스 시장엔 롯데칠성음료가 참여 중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네슬레와의 합작엔 계열사 ‘롯데푸드’가 주체로 나섰습니다. 롯데칠성음료는 ‘롯데네슬레코리아’ 가동 이후에도 기존의 칸타타 커피믹스 사업 등을 별도로 계속한다는 방침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경우 롯데그룹의 커피 사업은 두 계열사가 시장에서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됩니다.
이에 대해선 차후 롯데푸드가 네슬레 지분을 전면 인수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도 업계에선 나옵니다. 롯데가 완전히 인수한 뒤에 롯데칠성음료의 커피사업을 합병하는 방안이라는 겁니다.
아무튼 롯데의 계열사간 사업 중복은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거론됩니다. 롯데제과의 아이스크림 ‘월드콘’은 롯데푸드의 ‘구구콘’과 경쟁 관계입니다. 롯데푸드는 또 음료(삼강사와) 시장에서 롯데칠성음료와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현재는 회사가 없어졌지만 롯데기공이 아파트건설사업을 하면서 롯데건설과 경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들 사례와는 약간 다르지만 롯데그룹은 신격호 회장의 막내 동생인 신준호 회장이 최대주주인 푸르밀(옛 롯데우유)이 계열 분리된 뒤 3년만에 파스퇴르유업을 전격 인수해 우유사업에 재진출하기도 했고요. 파스퇴르유업은 2011년 롯데푸드에 흡수 합병됐습니다.
한경닷컴 뉴스국 윤진식 편집위원 js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