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시장경제] 윤석봉·김기준 씨의 '인생 재기 스토리'

입력 2014-01-27 20:55
수정 2014-01-28 04:14
결핵 앓던 노숙인서 결핵환자 돕는 요양보호사로 새 삶


[ 홍선표 기자 ] “같은 방에서 결핵을 이겨낸 게 벌써 2년 전이네요. 환자분들께 저희도 결핵약을 먹으며 치료받았다고 말씀드리면 다들 희망을 갖는 거 같아 뿌듯해요.”

27일 오후 서울역 인근 동자동에 있는 미소꿈터 사무실에서 만난 윤석봉 씨(56)와 김기준 씨(48)는 “이곳 401호실에 머물면서 결핵을 치료했다”며 건물 곳곳을 안내했다. 2011년 문을 연 미소꿈터는 국내 최초의 노숙인 결핵치료 시설이다. 노숙생활로 병(결핵)을 얻어 1년과 5개월씩 치료받은 윤씨와 김씨는 1급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 윤씨는 결핵전문병원인 서울서북병원에서, 김씨는 자신이 치료받은 미소꿈터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며 노숙인과 저소득계층 결핵 환자들을 돕고 있다.

포클레인 6대를 보유한 대구지역 장비업체 사장이던 김씨는 2000년 사업을 정리했다. 일감을 주던 건설업체가 외환위기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부도가 났기 때문이다. 2005년 이혼한 뒤 서울로 올라와 용접공으로 일했지만 이곳도 몇 달 못가 문을 닫았다.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김씨는 술에 의존하다 결국 노숙인으로 전락했다. 목수로 일하던 윤씨도 비슷한 시기에 일거리가 끊겨 거리를 헤매다 1998년부터 서울역에서 노숙자 생활을 시작했다.

오랜 노숙생활은 두 사람의 건강을 앗아갔다. 김씨는 “82㎏이던 몸무게가 50㎏까지 빠질 정도로 몸이 망가졌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일반 결핵보다 치료가 훨씬 힘든 다제내성 결핵에 시달렸던 윤씨는 “우연히 찾은 노숙인 지원센터에서 병원을 소개받지 못했다면 지금쯤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두 사람은 미소꿈터에 머물며 요양보호사 시험을 준비했다. 윤씨는 지난해 5월, 김씨는 11월 자격증을 땄다.

윤씨는 “지난해 7월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왔지만 자포자기 심정으로 완강히 치료를 거부하던 70대 할아버지를 설득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윤씨는 “결핵을 치료한 과정을 찬찬히 들려드렸더니 그날부터 식사하고 운동도 시작해 3개월 만에 퇴원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보름 전, 7년 만에 자식들과 처음 만났다. 김씨는 “몇 년 만의 재회로 서먹하기만 했다”면서도 “간병인으로 일하며 돈을 모아 가족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윤씨는 “노숙생활 이후 처음으로 이번 설에 고향 완주에 간다”며 “부모님과 가족은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친구들에게 건강한 모습을 자랑하고 싶다”고 환하게 웃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