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정민 기자 ] 연초부터 환율이 요동치며 국내 기업 수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쟁력을 갖춘 업체들은 기술력과 한류 열풍을 바탕으로 청마의 해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세계 일류상품 및 차세대 일류상품으로 선정한 제품들 중 화장품과 섬유 관련 기업 세 곳의 연구소장을 만나 제품과 기술력 비결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편집자 주>
SK케미칼과 삼양사가 화섬부문을 분리·합작해 세운 화학섬유 회사인 휴비스는 세계 일류상품 네 개, 차세대 일류상품을 다섯개나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PPS(Poly Phenylene Sulfide) 섬유인 제타원(Zeta ONE)을 세계일류상품에 올렸고, 차세대 일류상품에는 생분해 폴리에스테르, 융착 코팅형 직편물용 폴리에스테르(PET) 장섬유를 추가했다. 이 가운데 2001년 가장 먼저 세계일류상품에 선정된 로멜팅 화이버(LMF)는 2012년 기준 전 세계 시장점유율이 40%에 달한다.
휴비스가 보유하고 있는 세계 일류상품은 로멜팅 화이버, 잠재권축성 스트레치 원사(SSY), 콘주게이트(Conjugate), 제타원(Zeta ONE)이다. 차세대 일류상품은 젠트라(Zentra), 에코에버(Ecoever), 엑센(XN), 생분해 폴리에스테르, 융착 코팅형 직편물용 PET 장섬유이다.
이 같은 성과의 배경에는 기술력 성장에 힘을 쏟은 호요승 휴비스 연구소장(상무)과 연구진들이 있다. 호 상무는 1990년 삼양사에 입사한 뒤 여러 직책을 거쳐 2012년부터 휴비스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 호요승 상무 "연구원은 사람들이 원하는 제품이 뭔지 연구해야"
"기술 연구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제품이 뭔지 연구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시장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연구를 위한 연구만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전 휴비스 연구소에서 만난 호 상무는 일류상품을 여럿 배출해낸 기술력의 비결에 대해 "중요한 점은 그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을 더욱 경쟁력있게 만들어 내는 힘"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화섬업체인 휴비스의 사업군은 폴리에스테르 섬유 제조에 집중돼 있다. 산업현장과 의복 뿐만 아니라 자동차 내장재, 위생제품 등에까지 사용되는 섬유를 생산한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파라계와 메타계 아라미드를 동시 생산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호 상무는 연구원들에게 1년에 2회 이상의 해외출장 등을 통해 견문을 넓힐 것을 주문한다. 본인의 산경험에서 나온 조언이다.
그는 "연구소에만 있으면 자신이 아는 분야에 집착해 연구를 위한 연구만을 하기 마련"이라며 "본인도 대학원에 다니면서 고분자에 대해서만 연구해 입사 당시엔 폴리에스테르 구조식도 못 쓸 정도였고, 이후 다양한 직무를 거치며 보다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강조했다.
이를 절감한 것은 호 상무가 2006년 상품기획(FY Merchandising) 팀장으로 일하던 당시였다. 올해 차세대 일류상품으로 선정된 융착 코팅형 직편물용 폴리에스테르(PET) 장섬유를 블라인드에 적용해 대히트를 거두기까지 느낀바가 많았다 설명이다.
◆ "블라인드 제조섬유 90%는 휴비스의 '로멜라'"
호 상무는 상품기획 팀장이던 2006년 독일 하임텍스타일 인테리어 전시회에서 개발 단계에 있던 스크린 방식 블라인드를 접하게 됐다. 기존의 커튼을 대신해 스크린에 원하는 문양을 넣을 수 있는 블라인드 제품이었다.
향후 커튼 시장의 변화를 예감한 호 상무는 연구소와 얘기해 블라인드에 적합한 융착형 섬유 개발을 추진했다. 문제는 섬유 개발 이후의 판매였다. 당시에는 국내 인테리어 시장이 크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성과가 신통치 않았다.
이에 호 상무는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다. 상대적으로 인테리어 시장이 큰 유럽에 진출하고 싶었지만 직접 진출할 경우 재고 문제와 관세 등의 장벽이 걸렸다. 이에 발상을 전환해 유럽에 인테리어용 직물을 공급하는 터키를 공략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호 상무는 2008년 부푼 꿈을 안고 터키 현지 인테리어 전시회에 참가했다. 하지만 첫 참관에선 계약이 이뤄지기는 커녕 바이어들의 관심도 미미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듬해에는 같은 전시회의 중앙에 부스를 내고 국내 커튼 직물업체와 동행해 실제 제품을 선보이며 홍보에 나섰다. 바이어들의 반응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개최 기간동안 300~400명의 바이어가 제품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실제 매출이 발생한 것은 2010년이었다. 세 번째로 참가한 전시회에서 호상무는 쏟아지는 주문을 받으면서 소위 '대박'을 맞았다. 현재 휴비스는 한달에 블라인드용 융착형 섬유를 120~150톤 판매하고 있다. 블라인드에 사용되는 융착형 섬유는 90% 이상이 휴비스 제품(브랜드명 로멜라)이라고 보면 된다고 자신했다.
그는 "업계에서는 '포스트잇'과 같이 '로멜라(LOMELA)'라고 하면 블라인드용 특수 저융점 폴리머 소재를 부를 정도로 자리잡았다"며 "선점 효과로 급속도로 시장을 장악했고 휴비스의 가공 기준이 업계 기준으로 형성됐다"고 말했다.
시장을 이해한 제품 개발이 매출 발생과 판매로 이어진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고 호 상무는 강조했다.
그는 "시장 선점효과의 중요성과 함께 연구소로 돌아와서도 개발 제품을 누구에게 소개하고 시장에서 어떤 기능을 가질 수 있을 지 염두에 두고 개발에 임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 "시장점유율 1%포인트를 위해 연구소는 매일매일이 전쟁"
이 같이 시장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휴비스의 제품 개발은 시장점유율을 지키고 꾸준히 영향력을 늘리는데도 주효했다.
지난해 휴비스의 로멜팅 화이버 시장점유율은 2012년 40%에서 5%포인트 상승한 45%까지 치솟았다. 이 같은 점유율 확대는 우연이 아니었다.
로멜팅 화이버는 자동차 내장재와 매트리스, 소파 커버 등 수없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이 경우 회사는 각각의 세분화된 용도에 특화된 섬유를 만들어야 하고, 개별 제품상으로도 경쟁사 제품들보다 뛰어나도록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해줘야 한다.
호 상무는 "1%의 시장점유율을 올리기 위해 각 업체별로 치열한 경합이 이뤄진다"면서 "지역적으로 보완될 수 있는지 등도 중요한데 지난해 장섬유 부문의 경우 상대적으로 국내 시장에 머물러 엔저의 충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이 패인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 "친환경 제품 등에 대한 정책적 지원 아쉬워"
호 상무는 기업들의 기술 개발이 지속되기 위해선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친환경 제품 등 앞선 제품을 내놓아도 상업화가 어려운 시점에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
휴비스가 내놓은 '인지오(IngeoTM)'는 땅에 묻으면 6개월~1년 뒤에 썩는 친환경 섬유이다. 기존 친환경 비닐과 달리 100% 썩어 없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추가 공정이 들어가기 때문에 단가가 비싸 현재 일반 쓰레기봉투로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호 상무는 "일부 국가에서는 친환경 제품을 개발해 양산된 재생가공봉투에 일정수준의 보조금을 지급한다"며 "이 경우 정부 입장에서는 폐기물 매립에 들어가는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에 부담이 크지 않고, 개발 기업은 사업화로 연결, 기술은 추가 개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이탈리아의 경우 쇼핑백이 100% 생분해 돼야 한다는 규제가 있고, 과거 일본의 경우 재생섬유로 만드는 작업복을 채택한 회사는 법인세를 깎아줬다는 사례를 제시했다. 이 같이 해외에서는 친환경 제품 개발 기술이 사업화될 수 있는 정책적 환경이 조성돼 있는데 한국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향후 사업 전망에 대해선 위기와 기회가 혼재된 상황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한·터키 FTA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위기도, 기회도 올 수도 있다"며 "우리에게 누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메이드 포 차이나(made for China), '메이드포 터키(made for Turkey)'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얼마나 빨리 선점할지가 숙제"라고 말했다.
한경닷컴 오정민 기자 blooming@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