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진 기자 ]
이탈리아 미식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피에몬테 주는 이탈리아 사람처럼 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성지(聖地)다. 그중에서도 피에몬테 중심에 있는 알바와 그림처럼 펼쳐지는 포도밭이 빼곡한 바롤로 마을은 와인과 그에 어울리는 전통 음식으로 넘쳐나 사시사철 미식가들이 찾는 곳이다.
와인의 왕 바롤로
밀라노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이동하면 인구 3만명 정도가 사는 작은 도시 알바에 도착한다. 산 로렌초 성당과 그 앞 광장을 둘러싼 레스토랑, 식재료와 와인 파는 상점이 즐비한 시장은 하루 일정으로도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코스다. 바롤로에서 와인을 만드는 체레토 가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산 로렌초 성당 앞에 있으니 꼭 들러봐야 한다. 1층에 있는 라 피올라(La Piola)는 캐주얼한 피에몬테의 가정식을, 미슐랭 2스타를 받은 2층의 피아차 두오모(Piazza Duomo)에서는 이탈리아 요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파인 다이닝을 선보인다.
바롤로는 알바에서 약 10분 거리다. 이곳은 ‘와인의 왕’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네비올로 품종으로 만든 동명의 바롤로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산미가 덜하고 잘 익은 과일 향, 가죽 향이 풍부하며 구조감이 좋아 오래 숙성해야 그 진가를 발휘한다.
10월 말에서 11월 중순까지 이 지역에서 열리는 송로버섯 축제 때 방문하면 어떤 레스토랑이든 트러플로 향을 낸 파스타, 스테이크를 판매하는데, 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이 바롤로다. 바롤로는 포도밭에 따라 다시 바롤로, 라 모라, 세라룽가 달바, 몽포르테 달바, 카스틸리오네 팔레토로 나뉘는데 각 마을마다 중심가에 특색 있는 와인주점, 와인숍, 박물관이 있어 어느 한 곳을 빼놓고 둘러보기가 아쉽다.
바롤로의 와인 명가 보롤리
보롤리(Boroli)는 1831년부터 직물과 출판 회사를 경영하던 보롤리 가문의 실바노 에드 엘레나 보롤리가 설립한 와이너리다. 꽃 향기가 풍부하고 기분 좋은 산미가 있는 화이트 와인 ‘랑게 아르네이스’, 묵직한 네비올로와 산미가 있는 바르베라를 블렌딩해 언제 마셔도 좋은 레드 와인 ‘랑게 로소 안나’도 훌륭하지만 체레퀴오, 빌레로 등 최고급 포도밭에서 만드는 ‘바롤로’ 와인이 대표 상품이다.
보롤리는 벽돌로 지은 아담한 2층짜리 호텔 ‘로칸다 델 필로네’도 운영한다. 어떤 방에 묵어도 창문을 열면 아름다운 포도밭 풍경이 펼쳐진다. 1층에는 셰프 안토니노 카나바키우올로가 그의 일본인 제자 마사유키 곤도와 함께 지휘하는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도 있다. 세계 3대 식재료 중 하나인 송로버섯을 주제로 한 코스와 이탈리아 남부 및 북부의 식재료를 아우르는 코스가 대표 메뉴. 금액을 추가하면 아르네이스, 네비올로로 만든 보롤리의 와인과 함께 즐길 수 있다. 송로 버섯 시즌인 10월과 11월엔 저녁에만 문을 열며 숙소 예약은 웹사이트(locandadelpilone.com)에서 할 수 있다.
체레퀴오 포도밭의 눈부신 풍광
1958년 설립된 미켈레 키아를로는 피에몬테 최고의 와인 산지에서도 제일 좋은 단일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만든다. 이 지역의 풍경을 아름다운 일러스트로 표현한 아트 레이블, 포도밭에 세운 아트 파크, 2011년 완공한 리조트형 와이너리 호텔 등 다양한 문화예술 사업에도 기여하고 있다.
감초 등 향신료의 향이 화려하게 피어 오르는 ‘바르바레스코 아실리’, 신선한 붉은 과일 향이 돋보이는 ‘바르베라 다스티 레 오르메’ 등 다양한 베스트셀러 와인이 있지만 그중 최고는 ‘바롤로 체레퀴오’다. 1750년대부터 바롤로를 만들었던 유서 깊은 포도밭의 포도로 만들며 빈티지가 좋은 해에만 생산한다. 종을 울려 노동 시간을 알렸던 19세기의 상황을 종탑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레이블도 눈길을 끈다.
이곳을 방문할 예정이라면 체레퀴오 포도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팔라스 체레퀴오’ 호텔에 숙소를 예약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약 50년에 걸친 빈티지 와인을 보관한 지하 셀러 겸 박물관, 룸과 레스토랑, 작은 교회가 있다. 방은 전통과 모던 콘셉트로 나눠 방문객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데, 전통 방에 묵었던 일행은 스팀 사우나실과 저쿠지가 있는 모던 룸을 내내 부러워했으니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될 듯하다. 봄, 여름, 가을 내내 야외 테이블을 내놓는 레스토랑에서는 피에몬테 전통 음식을 판다. 으리으리한 요리보다는 와인 안주로 어울리는 메뉴가 다양하다. 이탈리아식 육회 카르네 크루다나 앤초비의 함량, 소스의 묽기에 따라 맛이 각기 달라진다는 피에몬테 송아지를 슬라이스한 비텔로 톤나토처럼 애피타이저에 속하는 메뉴만 시켜도 ‘와인의 왕’이라 불리는 바롤로나 형제급 바르바레스코 와인 안주로 손색이 없다. 숙박과 레스토랑, 와인 테이스팅 예약 모두 웹사이트(palascerequio.com)를 통해 할 수 있다.
여행팁
이탈리아 밀라노까지는 대한항공이나 알이탈리아 등의 직항노선이 있다. 인천~밀라노까지 총 1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밀라노에서 근교 도시로 이동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동차 렌트다. 허츠(hertz.com) 등 렌트 사이트를 통해 미리 예약한 뒤 공항 지하 주차장에서 픽업하면 된다.
이영진 여행작가·맛컬럼리스트 madam_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