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에 대한 준비성
지원자 끼·열정·회사 관심도
중요한 평가 요소
[ 공태윤 기자 ]
‘토익 935점, 학점 4.0, 인도 해외봉사, 금융 3종 자격증.’
지난 16일 신입사원 채용 원서 접수를 마감한 허고은 PCA생명 인사팀 과장은 지원자들의 이런 고(高)스펙에 놀랐다. 토익 900점은 기본이고 학점도 4.0 이상이 수두룩했으며, 게다가 외국대 출신에 다른 금융권 인턴 경험자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채용공고를 내면서 ‘보험·금융자격증 보유자 우대’를 명시한 탓인지 금융 자격증이 없는 지원자를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였다. 허 과장은 “토익 900점이 안 되면 요즘엔 아예 기재를 안 하는 분위기”라며 “금융 자격증도 더 이상 차별화가 안 될 정도”라고 털어놨다. 이 회사가 지난해 뽑은 합격자의 50%는 금융 자격증이 하나도 없었다.
취업이 갈수록 어려워지자 취업준비생들은 스펙 쌓기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취준생 사이에선 ‘스펙 5종’(학벌·학점·토익점수·어학연수·자격증)도 모자라 ‘스펙 8종 세트’(봉사활동·인턴·수상경력 추가)가 필수조건이란 얘기가 나돌았다. 하지만 정작 기업 채용 담당자들은 구직자의 고스펙이 취업에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잡코리아는 최근 국내 기업 인사 담당자 316명을 대상으로 ‘스펙이 채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문 조사했다. 설문에 참여한 인사 담당자의 93%는 “채용 시 입사 지원자들의 스펙이 과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기업은 최근 신입사원을 뽑으면서 스펙보다는 직무 관련 준비성, 지원자의 끼와 열정, 회사에 대한 관심도를 더 중요한 평가요소로 삼고 있다. 채용 방식도 기존의 획일적 서류전형보다 ‘자기PR’이나 ‘길거리 캐스팅’ 등 다면평가를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
설문 결과 인사 담당자들은 채용 시 불필요한 항목으로 어학연수(37.7%)를 가장 많이 꼽았다. 누구나 한번씩 다녀오는 어학연수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어 불필요한 스펙으로는 △봉사활동(31.0%) △학벌(28.8%) △토익점수(27.2%) △수상경력(21.2%) △학점(16.5%) 등의 순이었다.
반면 가장 높이 평가한 항목은 ‘직무 관련 자격증’이 응답률 46.8%로 가장 높았다. 또 △학점(29.1%) △인턴경험(28.2%) 등을 중시한다고 답했다.
채용 시 스펙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직무 분야로는 ‘연구개발’이 48.1%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기획·전략직(26.6%) △전문직(20.3%) △정보통신기술직(16.1%) △회계·총무직(15.5%) △마케팅직(14.9%) 등의 순이었다. 반면 스펙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직무에는 서비스직이 응답률 42.7%로 1위에 올랐으며 이어 △생산·기술직(30.7%) △영업·영업지원직(28.5%) △홍보·PR직(13.9%) 등의 순이었다.
진동철 SK 인사 담당자는 “기업들의 채용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며 “과거엔 어학성적, 학력 등 스펙이 우수 인재를 뽑는 잣대였지만 경영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지금은 열정을 갖고 일하면서 소통할 줄 아는 창의적 인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