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과잉입법이 만드는 무법천지

입력 2014-01-20 20:35
수정 2014-01-21 05:09
사법부는 판사 맘대로 재판하고
국회는 아무 법이나 찍어내고…
법에 대한 존중심 모두 사라져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오류와 과잉, 일탈과 아집에 사로잡혀 법을 종이쪽지로 만드는 데는 사법부도 예외가 아니다. 시위 중에 깨진 유리조각을 경찰에 던진 자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판사다. 김일성 묘소에 참배한 종북분자에게 동방예의지국을 운운하는 희롱조의 판결문을 쓴 자도 판사다. 좌편향 판사라는 비판도 아깝다. 전교조는 무죄요, 그들의 이름은 공개되면 안되는 보호 받아야 할 사적이익이다. 그래서 그 명단을 공개한 사람에게 사실상 평생의 소득을 차압하라는 어처구니 없는 벌을 내린 자도 판사다. 그렇게 사상의 오염에 면죄부를 주었다. 주먹을 휘두를 자유는 상대방 코앞에서 멈춘다고 했던 좌익 브랜다이스 판사가 부끄러워할 지경이다.

높은 법대에 앉아 언어폭력도 인권무시도 가카빅엿을 날려대도 그만이다. 사법부의 독립이 법의 존엄이 아니라 제멋대로 재판을 의미하는 곳은 한국이다. 재판정마다 판결도 제멋대로다. 보편 법정을 요구했던 볼테르가 웃을지 모르겠다. 해병대가 아니라 한 번 판사야말로 영원한 판사다. 1988년 판사 재임용제가 도입된 이후 25년간 임기 10년인 판사 중 탈락자는 5명밖에 없었다는 정도다. 법보다 동업자 의식에 더 철저하다. 마침 법무부는 상법에 이어 상속제도를 변호사의 손길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도록 복잡하게 다듬고 있다. 유언장의 효력마저 제멋대로 정지시키는 민법개정안이다. 대체 어느 나라 민법이 사유재산을 이렇게 능멸하는지 모르겠다. 법조3륜이 한통속이다. 검찰은 무소불위의 저승사자였다. 그 자체로 호위무사 따위의 무협지 놀이다. 이 정도라면 지력을 탓할 수도 없다. 저질 국가다.

무법천지의 원조는 국회다. 공화국 설계 충동은 미숙한 청년들의 특권이지만 한국서는 늙은 국회의원의 주특기다. 지금은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무자비한 입법권력의 폭주가 더 문제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의 권력도 모자라 개헌을 도모하는 중이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원 1명의 권한을 최대한 확장시킨 제멋대로 중(重)다수결 제도다. 그렇게 의원회관 복도는 종일 민원인들로 북적댄다. 민원인을 많이 만들어 낼수록 힘 있는 의원이라는 증좌다.

무엇보다 도처에 법, 법, 법이다. 그들은 법을 쏟아내고 있다. 19대 국회 1년 반에 의원입법 8184건을 포함해 8684건의 법안이 발의되었다. 17대 5년간의 7489건을 이미 넘어섰고 곧 18대를 넘어설 태세다. 정치과잉은 필시 입법과잉으로 치닫는다. 단언컨대 법률의 이름이나 알고 통과시키는 국회의원이 있겠는지. 쏟아지는 법률이란 대체 무엇인가. 누군가에게 특권을 보장하거나, 특혜를 부여하거나, 사유재산을 침해하거나, 기업 활동을 규제하거나, 기업인을 벌주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세금을 올리거나, 그것조차 아니라면 무의미한 도덕적 주장을 선언하는 그런 것들이다. 19대 들어 이미 2293건의 법률이 그렇게 확정되었다. 예·결산법이나 결의안은 모두 제외한 수치다. 그들은 읽어보지도 않고 도장을 찍어댄다. 아니 읽었을 리가 없다. 법률이 많아질수록 자유는 필연적으로 제한된다. 그것을 우리는 경제민주화라고 부르고 있다.

연말 예산국회의 대미를 장식하는 쪽지 예산은 언론에 그 실상을 보도하기조차 두렵다. 홍길동 의원이 터무니 없게도 쪽지를 끼워 넣었다는 보도는 지역구에서는 오히려 당선 보증수표로 둔갑한다. 욕을 먹으면서도 지역을 위해 미친 짓을 했다는 증거다. 그러니 다시 찍어주어야 그 짓을 또 해줄 것이다. 정상배가 들끓게 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행정규제는 더할 나위가 없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규제는 폭발이다. 이미 1000건이 넘었을 것이다. 공무원들은 의원입법이라는 꼼수를 부리면서까지 규제를 만들어 낸다. 규제는 퇴직 공무원들까지 먹고사는 권한의 밑천이다. 일하는 자가 천대받고 도덕을 말하는 자가 우대받는 사농공상의 주자학적 국가는 그렇게 완성되고 있다.

입법 행정 사법의 국가권력 중 어느 곳도 경제적 자유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다. 자유가 질식당하고 있다. 무법천지가 되고 있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