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이 개봉 33일 만에 관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돈 버는 데 급급했던 상고 출신 세무전문 변호사가 인권변호사로 변신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렸다.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작년 12월19일(대선 1주년) 개봉한 이유가 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보수우파 진영에선 영화가 부림사건을 왜곡하고 명백한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을 미화했다고 비난하고, 진보좌파 진영은 어쨌거나 ‘변호인’ 신드롬에 한껏 고무돼 있다.
한국에 ‘변호인’이 있다면, 일본에서는 법정드라마 ‘리갈 하이’가 선풍을 일으켰다. 주인공 고미카도 겐스케는 “누구의 변호를 맡든 상관없고, 내 목표는 재판에서 이기는 것, 그리고 돈을 많이 받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외친다.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선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파렴치한 변호사지만 맡은 사건은 한번도 패소한 적이 없다. 그는 “변호사는 결코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존재가 아니라, 단지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신념대로 행동한다. 현실적이어서 종종 불편할 기분이 들 정도다.
그러나 변호사의 역할과 본분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영화는 변호사를 정의의 사도처럼 그리지만 법정은 귀납적 추론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정의에 도달하는 곳이지, 개인의 의지와 덕목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곳은 아니다. 변호사는 무죄변론 의뢰인이 진짜 유죄라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오직 의뢰인의 승소를 위해 무죄를 주장해야 하는 법정의 한 논리구조일 뿐이다. 근대 사법제도는 법정에서 검사, 변호사, 판사의 3단 논법을 통해 진실을 발견하는 과정이지, 암행어사가 마패를 꺼내드는 그런 장소가 아니다. 법정을 통해 정의가 발견되는 것이지, 변호사가 정의를 실현하는 것도 아니다.
‘변호인’이 1000만 관객을 모은 것은 무엇보다 웰메이드 영화였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과거사를 과도하게 윤색해 공산주의 의식화 운동을 민주화로 치환하거나, 법치구조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거나, 현실 정치투쟁의 밑천으로 삼는다면 비판받기 충분하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지만, 법 교육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