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내몰린 전선업계, 건설 불황·공급과잉에 원전비리 사태 '3중고'

입력 2014-01-16 21:30
수정 2014-02-04 16:35
작년 한국전선 등 문 닫아
"올해는 얼마나 더 쓰러질지"


[ 김병근 기자 ] “죽지 못해 살고 있습니다. 오늘내일하는 업체가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중소 전선업체 S사 사장)

전선업계가 새해 들어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계속된 건설 경기침체와 과당 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에다 원전 사태로 인한 신뢰성 타격까지 겹치면서 전선 업체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5년 만에 건설 수요 20% 감소

전선업계가 어려운 것은 건설경기 불황 탓이 가장 크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국내 신규 건설 잔액은 2007년 127조9118억원에서 2012년 101조5061억원으로 20.6% 감소했다. 지난해 11월 누적 잔액은 76조954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2% 줄었다.

전선업계 관계자는 “2007년 이후부터 작년까지 시장이 계속 쪼그라들었다”며 “건설 계약금액의 5% 안팎이 전선에 쓰이는 비용”이라고 설명했다.

전선업체나 건설 대기업이 해외에서 큰 프로젝트를 수주해 일감을 나눠주는 물량도 해외 경기 부진 탓에 줄었다. LS전선 관계자는 “예전에는 유럽 업체들은 주로 유럽 시장에서, 미국 업체는 미국에서만 활동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지금은 다들 어려워지자 세계시장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수요보다 많은 공급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에 등록된 회원사는 지난해 말 66개사였다. 연 매출이 100억원을 넘는 기업들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보다 작은 영세 업체까지 포함하면 전선업체 수는 300여개로 늘어난다.

전선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1990년대 경제 성장의 수혜를 입으면서 전선업체가 늘어났다”며 “하지만 시장이 작아진 지금도 업체 수가 크게 변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수요보다 공급이 훨씬 많아졌다는 것이다.

세계시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 빅3 전선업체의 시장점유율은 다 합해도 20%가 채 안 된다. 2011년 기준 이탈리아 프리즈미안이 6.8%로 1위를 달리고 있고 프랑스 넥상스(6.3%)와 LS전선(5.8%)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쓰러지는 기업들

과당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피하지 못해 쓰러지는 전선업체가 늘고 있다. 연 매출 1700억원대(2012년 기준)의 경안전선이 지난해 9월 정부의 유동성지원 프로그램인 ‘패스트트랙’에 들어갔다. 1차 부도를 막고 살아나는 듯했지만 끝내 홀로서는 데 실패했다. 이에 앞서 같은 해 8월에는 국내에서 다섯 번째로 오래된 한국전선(1965년 설립)이 문을 닫았다. 이 회사는 현재 기업은행 주도로 부동산 경매를 진행 중이다.

원전 사태의 후폭풍이 예사롭지 않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JS전선 등 일부 전선업체들이 원전 비리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전선업체를 도매금으로 보는 시선이 영업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며 “다들 어렵다고 해도 근근이 버텼는데 지난해 처음 2개 중견업체가 무너졌고 올해는 얼마나 더 쓰러질지 두렵다”고 말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