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본사 돈 쌓아두지 않아
전세계에 설비·고용 등 재투자
그 중 한국 투자비중 높은 편
[ 이상은 기자 ]
“외국계 회사는 배당으로 돈만 빼간다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김종갑 한국지멘스 회장(63·사진)은 16일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외국계 회사 최고경영자(CEO)가 돼 보니 ‘외국계’ 회사에 대한 한국인의 적대적인 시각을 느끼고 당황할 때가 적지 않다”며 이같이 말했다. 옛 산업자원부 차관을 지낸 관료 출신의 김 회장은 2007년 민간 기업인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사장으로 영입돼 4년간 일했고 2011년 6월부터 독일계 지멘스의 한국법인 회장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외국계 기업에 대한 한국인의 편견 중 대표적인 게 ‘배당’이라고 했다. 그는 “외국계 기업 본사에 배당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돈은 본사에 쌓여있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를 정해 전 세계 193개국에 재투자된다”며 “배당은 이를 위한 절차일 뿐”이라고 했다. 이어 “외국계 회사가 가진 강점을 어떻게 한국에 가져올 것인가를 생각해야지, 세계 7위 무역국가에서 무엇이 우리 것이고 무엇이 남의 것이냐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 한국은 재투자를 많이 받고 있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멘스 본사의 가스발전소 사업을 떼내 작년 10월 서울 충정로 본사로 옮긴 ‘에너지솔루션즈’를 꼽았다. 9000만유로(약 1303억원)가량이 투자됐고, 100여명의 독일 본사 엔지니어들이 순차적으로 한국에 들어와 근무한다. 한국인 직원 채용도 병행해 2017년에는 520여명 규모로 사업을 키울 계획이다.
김 회장은 “이를 통해 투자되는 돈은 한국지멘스의 수년치 배당금에 해당한다”며 “앞으로 에너지솔루션즈를 통해 한국에 기술이 이전되는 무형의 효과를 생각하면 그보다 훨씬 큰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멘스 본사는 한국 건설업체와 함께 아시아·태평양·중동지역 발전소 및 공장건설 프로젝트의 총괄 수주가 늘자 아예 관련사업 부문을 한국으로 이전했다.
김 회장은 올해 가장 큰 목표가 에너지솔루션즈를 비롯해 한국지멘스를 ‘한국기업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내 엔지니어링·연구개발·제조 역량을 강화하고 협력업체도 적극 발굴해 해외 공동진출을 늘릴 계획이다.
그는 “독일 엔지니어들의 기술과 노하우가 3~5년 뒤 한국 엔지니어들에게 거의 다 전수되면 한국인에 의해 운영되는 세계 최고수준의 에너지솔루션 회사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에서 외국인 엔지니어를 고용하는 비용이 매우 크기 때문에 빠르게 기술을 전수해야 회사 입장에서도 이익”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취임 당시 약속한 ‘5년간 2배 성장’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 회장은 최근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소로 ‘정치’를 꼽았다. “최근 정치권의 인기 영합주의가 걱정스러운 수준”이라며 그는 “시장에 맡겨야 할 부분도 전부 규제로 해결하려 드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