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만난 안홍철 한국투자공사 사장 "1조원 손실 메릴린치 지분, 1월중 매각여부 결정"

입력 2014-01-15 20:53
뉴스 & 인터뷰

대체투자비중 30%로 확대
국내운용사 실력 늘 때까지 투자금 맡기지 않겠다


[ 뉴욕=유창재 기자 ] 한국투자공사(KIC)가 2008년 1월 투자해 현재 약 1조원의 장부상 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의 지분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KIC는 또 현재 8%인 대체투자 비중을 30%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다만 국내 자산운용사에는 당분간 추가로 돈을 맡기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안홍철 KIC 사장(사진)은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기자들과 만나 “2008년 당시 메릴린치에 함께 투자했던 싱가포르투자청(GIC)은 이미 손절매한 뒤 다른 곳에 투자해 손실을 만회한 것으로 들었다”며 “우리도 별도의 팀을 꾸려 지분 매각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한 달 안에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KIC는 2008년 1월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동성이 부족해진 투자은행(IB) 메릴린치에 20억달러를 투자했다. 메릴린치는 같은 해 8월 BoA에 인수합병(M&A)됐으며 KIC는 합병 법인 주식을 지금까지 보유하며 1조원에 가까운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안 사장은 “KIC가 현재까지 지분을 매각하지 않은 것은 정부가 ‘미실현손실’을 처리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라며 “BoA메릴린치의 주가 전망, 더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는 다른 투자처, 지분 매각 및 재투자에 따른 거래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매각 여부와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사장은 앞으로 사모펀드, 헤지펀드, 부동산, 인프라스트럭처 등 대체투자 비중을 현재 8%에서 30%까지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여러 개 외부 자산운용사에 5000만~1억달러의 소액을 분산 투자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위탁 운용사 수를 절반으로 줄이되 개별 회사에 위탁하는 금액을 크게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 단위가 커져야 운용사들이 좋은 딜을 KIC에 가져온다는 설명이다.

그는 하지만 국내 자산운용사에는 실력이 좋아질 때까지 투자금을 맡기지 않겠다고 말했다. “국내 자산운용업의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손실을 감수하면서) 국민의 돈(외환보유액)을 맡길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특히 “미래에셋의 경우 돈을 맡겼다 손실이 너무 커 모두 회수했다”고 설명했다.

안 사장은 “연기금이나 KIC가 국내 운용사들에 해외 투자의 일정 부분을 맡겨야 한다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주장은 말도 안 된다”며 “만약 원금을 보장해주겠다고 하면 고려해볼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안 사장의 이 같은 발언이 알려지면서 국내 자산운용업계는 발끈했다. “자산운용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KIC의 설립 목적 중 하나”라는 것. 홈페이지에 따르면 KIC의 설립 목적은 ‘외환보유액 및 공공기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함으로써 국가자산을 증대하고 금융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돼 있다.

안 사장은 현재 660억달러 수준인 KIC의 자산운용 규모가 올해 안에 1000억달러로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또 “조만간 새 최고투자책임자(CIO) 영입을 마무리할 것”이라며 “과거처럼 외국인을 뽑는 일은 절대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 중 일류 수준의 투자 전문가를 영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