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오는 2015년부터 시행되는 개정 유해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의 제재수준을 낮추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화학물질 사고 발생시 해당 사업장 매출액의 최고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개정 화관법은 지난해 엄청난 논란을 몰고 왔다. 사고가 한 번이라도 나면 대기업은 최고 조 단위의 과징금을 물어야 하고, 중소기업은 아예 문을 닫을 수도 있다. 뒤늦게 문제점을 인식한 정부가 부랴부랴 하위규정을 통해 제재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예외에 예외를 만드느라 규정집은 누더기가 될 판이다.
정부는 ‘해당 사업장’의 기준을 ‘문제가 발생한 지역’ 등으로 규정해 과징금 수준을 낮춰볼 모양이다. 예들 들어 반도체 공장에서 사고가 터지면 반도체 사업 전체가 아닌 해당 공정을 하나의 사업장으로 보고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면 제재수준은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반도체, 정유, 일반 제조업 등 업종마다 화학물질 사용방법이나 사고 발생시 피해 형태가 다 다르다. 공장, 공정, 라인, 플랜트, 사업부 등으로 세세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결국 공무원들의 자의적 해석에 따라 과징금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도록 되고 말았다. 정부는 제재수준을 낮추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관료의 자의적 해석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규제요 사업위험이다. 이 모든 해프닝은 화학물질 누출 사고시 과징금을 해당 사업장 매출액의 5%로 대폭 올려놓은 법 개정에서부터 비롯됐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게 사고다. 그런 사고가 한 번이라도 터지면 아예 기업을 죽이겠다는 식으로 상위법이 징벌적 규제를 담았으니 업종마다 해당 사업장을 달리 해석하는 것 말고는 제재수준을 낮출 다른 방도가 없게 된 것이다. 무슨 일만 터지면 바로 규제를 강화하고, 뒤늦게 문제점을 발견하면 또 이를 보완한답시고 법석을 떠는 전형적 해프닝이다. 이런 무차별 징벌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지금 우리 국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