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화강암 같은 화폭에 서민의 삶 껴안다

입력 2014-01-08 20:40
수정 2014-01-09 09:37
17일부터 가나인사아트센터서 '탄생 100주년 기념'展
유화·수채화 등 120점 사상 최대 규모…미공개작 많아


[ 정석범 기자 ]
아무리 뛰어난 석공이라도 화강암에 대상을 정교하게 표현하기는 어렵다. 작은 충격에도 잘 깨지기 때문이다. 오직 소박한 이미지만을 허용할 뿐이다.

그런 소박한 화강암의 성질을 조형어법으로 삼아 소박한 서민의 정서와 결합시킨 화가가 바로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사진)이다. 가나아트갤러리는 오는 17일부터 3월16일까지 그의 삶과 예술을 기리는 대규모 기획전을 서울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연다.

1914년 2월14일 강원 양구에서 광산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박수근은 부친의 사업 실패로 궁핍함 속에서 성장했다. 초교밖에 나오지 못한 그는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봄이 오다’로 입선해 화가로 데뷔했다. 해방 후에는 국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을 지냈다. 뒤늦게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1965년 간경화로 타계했다.

박수근의 작품이 모든 이의 공감을 자아내는 것은 일제강점기, 그 어려운 시기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묵묵히 살아간 서민의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 때문이다.

그는 생전에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갖고 있다”고 되뇌었다. 평생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했지만 세상에 대한 낙관적 시선을 잃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의 그림은 보는 이의 공감을 더욱 자아낸다.

그런 화가의 따스한 시선은 화강암의 표면 같은 독특한 질감으로 더더욱 애잔하게 다가온다. 유홍준 명지대 명예교수가 “화강암 절벽을 프로타주 기법(종이를 돌멩이에 대고 연필로 문지르는 것)으로 나타낸 것 같은 질감”이라고 표현한 이 기법은 박수근 회화의 트레이드마크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남긴 유화 90여점, 수채화와 드로잉 30여점 등 모두 120점이 나온다. 역대 최대 규모다. 그의 대표작이자 한국 최고 경매가 기록(45억원)을 갖고 있는 ‘빨래터’를 비롯해 ‘노상’ ‘시장 사람들’ ‘아기 보는 소녀’ 등 대표작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다. 그가 그린 아들 성남씨의 어린 시절 초상 등은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이옥경 가나아트 대표는 “박수근의 작품은 시장 위축, 위작 시비와 맞물려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다”며 “이번 전시가 그의 작품 세계를 되돌아보고 미술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가나아트는 이번 전시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 갤러리 대신 인사아트센터 전 관에서 열기로 했다. 국민화가인 박수근의 작품을 대중이 접근하기 쉬운 곳에서 널리 소개하고 외국인들에게도 한국 예술의 우수성을 알리자는 뜻에서다. 박수근의 작품을 확대한 벽면을 배경으로 관객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마련된다. 일반 1만원, 초등생 6000원. (02)720-1020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