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끝) 곽태원 서강대 명예교수
복지재원 마련 어떻게…성장없는 증세는 국민만 고통
법인세율 올려 복지확대 안돼…부가세 올리고 면세품목 축소
한국의 저성장 탈출 해법…반시장적 분위기에 기업 위축
정부의 불합리한 규제 없애야 대기업 투자 늘어 생산성 제고
[ 김유미 기자 ]
“경제 성장 없는 증세는 국민을 괴롭힐 뿐입니다. 특히 법인세율 인상은 분배구조를 오히려 악화시킵니다.”
곽태원 서강대 명예교수는 조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오해를 풀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법인세는 공평하고 부가가치세는 비효율적이라는 대다수의 생각은 사실 편견에 가깝다”며 이론과 사례를 곁들인 반박을 이어갔다. 지난해 세제발전심의위원장을 맡아 정부의 조세정책을 자문했던 곽 교수는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는 불가피하다”면서도 “기업 투자를 촉진해 세수 바탕인 국내총생산(GDP)을 늘리는 방안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3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에서 진행됐다.
▷새해부터 증세가 논란이다.
“복지란 것은 당연히 증세를 수반한다. 탈루 차단이나 비과세 감면 정비 등은 증세를 위한 매우 기본적인 조치다. 복지 지출도 효율화해 바가지가 새지 않게 해야 한다. 그 다음으론 조세체계를 정비해 조세 부담률을 높여가는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경제 성장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다. 성장 없이 조세 부담을 높이는 것은 국민을 괴롭게 한다.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복지 확대는 영구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위해선 세율뿐 아니라 조세의 기본 바탕인 GDP부터 끌어올려야 한다. 선진국 경제 역사를 보면 1인당 GDP가 올라갈 때 조세 부담률도 올라갈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증세 수단은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증세 수단의 예를 든다면.
“법인세율 인상은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 수단이 될 수 없다. 법인세율은 다국적 기업들이 입지를 결정할 때 매우 중요한 변수다. 그래서 지난 10여년간 선진국을 포함해 대부분의 나라가 법인세율을 경쟁적으로 낮췄다. 법인세율을 높이면 단기적으로는 세수가 더 늘어나겠지만 기업 투자가 줄어 GDP가 떨어지고 고용도 줄어들게 된다. 결국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수입까지 떨어뜨리고, 궁극적으로는 법인세 수입도 예전 같을 수 없게 된다.”
▷법인세 최저한세율 인상안이 처리됐는데.
“법인세율 인상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조세에 대한 국민들의 오해가 여전한 것 같다. ‘법인세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세제’라는 생각 말이다. 대기업이 부담하니 법인세율을 높이면 분배가 개선될 것 같지만, 연구 결과는 그 반대다. 법인세율 인상으로 인해 고용이 줄어들면 그 부담은 중·저소득 근로자들에게 돌아간다. 즉 분배가 오히려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이론적으로도 법인세는 가장 ‘비효율적인 조세’다.
▷왜 그런지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해외시장을 주로 공략하는 대기업들이 있다. 그런데 단지 국내에 있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 기업보다 훨씬 높은 법인세 부담을 진다. 해외에서 경쟁할 땐 불리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기업들의 해외 이동이 과거와 달리 자유롭다. 법인세 부담이 높은 국가를 손쉽게 떠날 수 있다는 얘기다. 기업이 떠나면 그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간다. 한국은 법인세 비중이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나라다. 낮춰야 한다.”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증세는 어떻게 하나.
“부가세로 풀어가야 한다. 국민들이 또 오해하는 것이 ‘부가세는 비효율적’이란 것이다. 모든 계층에 똑같은 세율이 적용돼 재분배 기능이 떨어진다는 이유다. 하지만 복지 재원으로서 부가세는 매우 효율적인 세제다. 세수를 중·저소득층 대상으로 쓰면 재분배로 손쉽게 이어진다.”
▷정부는 부가세 인상에 부정적인데.
“부가세에 대한 오해가 여전한 만큼 인상론을 꺼내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세율 인상과 면세품목 축소를 논의해가야 한다. 이번 정부부터 부가세 인상을 공론화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은 부가세율(10%)이 낮은 편이다.”
▷정부의 복지정책은 어떻게 보나.
“정부가 복지공약 이행을 강조하는 것은 신선한 면이 있다. 하지만 대선 후보일 때 가졌던 정보는 완전 무결할 수 없다. 정부를 인수한 뒤 알게 된 정보와 그동안 바뀐 여건을 감안해야 한다. 그래서 공약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면 이를 인정하고 수정, 철회하는 것이 보다 정직한 자세다. 무리하게 공약을 이행하라고 밀어붙이는 세력이나, 잘못된 공약까지 억지로 이행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정치인은 ‘비뚤어진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민을 위해 기꺼이 약속을 못 지킨 정치인이 되겠다면 국민들은 더 큰 박수를 보낼 것이다. 예를 들어 기초노령연금은 일시적인 제도라고 못박아야 한다. 수급 대상도 앞으로 줄어들게끔 설계해야 한다.”
▷기초노령연금 대상을 왜 줄여야 하나.
“노인 빈곤이 발생하는 것은 고령자 가운데 연금제도 혜택을 못 받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제도가 성숙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다. 따라서 기초노령연금 확대보다는 기초생활보장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그 재원도 연금이 아니라 세금에서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철도노조 파업 등 사회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계층 간 갈등은 일자리 확대로 푸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복지제도를 꾸준히 확대하고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려면 경제 활성화가 전제돼야 한다. 실증적 연구들을 보면 경제 성장은 절대빈곤을 확실하게 줄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성장을 해야 더 많은 복지 지출도 감당할 수 있다.”
▷올해엔 한국 경제가 저성장에서 벗어날까.
“좋은 상황은 아니다. 투자 부진이 가장 큰 문제다. 선진국 경기가 완만하게 회복된다고 해도 엔화 약세, 중국 경제의 더딘 회복, 안보 위험 등 불리한 여건이 많다. 안으로는 기업 규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에 따라 인건비도 오를 전망이다. 차기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서비스산업도 발목잡기가 여전하다보니 투자 확대를 낙관하기 어렵다.”
▷1990년대 일본식 장기 침체 우려도 일부 있는데.
“장기 침체 가능성이 있지만 일본처럼은 아닐 것이다. 일본의 디플레이션은 거시경제 정책의 실패에서 비롯됐다. 한국은 규제와 반시장 정책 같은 보다 근본적인 정책 실패가 단초가 될 수 있다. 이는 낮은 생산성과 투자 부진 등 경제의 무력화로 이어진다. 이런 악순환이 고령화와 맞물리면서 장기 저성장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
▷경기가 문제는 아니란 뜻인가.
“그렇다. 한국이 고민할 것은 단순한 경기 변동 차원이 아니다. 개발연대부터 이어진 경제발전 흐름이 좌절되느냐가 핵심이다. 이런 근본적 질문 없이 무리한 경기 부양을 추진했다가는 더 심각한 상황이 올 것이다. 광범위하고 뿌리 깊은 저생산성이 심각한 문제다. 고령화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고령화가 앞서 진행된 선진국들도 1인당 GDP는 한국보다 높다. 생산에 참여하는 연령층이 적은데 인구당 소득이 높은 것은 생산성이 높다는 증거다.”
▷한국의 생산성이 낮은 이유는.
“여전히 자본과 기술의 축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투자가 더 일어나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대기업 역할이 더 필요하다. 일부에선 대기업이 투자해도 고용이 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고용 없는 성장’에 대한 비판이다. 하지만 이것도 어찌보면 편견이다. 한국 경제는 더 이상 60년대 수공업 국가가 아니다. 고용을 늘리기 위해 그때로 돌아가야 하는가.”
곽태원 교수는 토지 세금정책 연구 대가…정부 세제개편안 논의 참여
곽태원 서강대 명예교수는 2006년 제25회 다산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세 전문가다. 특히 토지에 대한 세금정책 연구로 정평이 나 있으며, 조세의 소득 재분배 기능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난해부터 세제발전심의위원장을 맡아 정부의 세제개편안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세계화와 자본 이동의 자유화 등을 감안해 합리적인 조세정책을 짜야 한다고 조언해왔다.
△인천 출생(1944년) △서강대 경제학과 졸업(1972년) △미국 샌타클래라대 경제학 석사(1977년)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1983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1977~1989년)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부교수(1989~1991년)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1991년~) △한국조세연구원 이사(1995~1997년) △한국공공경제학회장(1998~1999년) △세제발전심의위원장(2013년~)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