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환율의 저주' 투자활성화로 풀어야

입력 2014-01-06 20:31
수정 2014-01-07 03:48
"가파른 엔저 역습 맞은 한국 경제
中企 대부분 타격 받을 가능성 커
투자·소비 늘리는 직접지출 조정을"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myshin@lgeri.com >


완만하나마 경기회복이 이어지는 가운데 몇몇 정치사회적 이슈들이 얼추 봉합되면서 체감경기 개선 기대도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리스크가 적지 않다. 그 한가운데에 환율이 자리잡고 있다. 우려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연말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결정 이후 엔화가 가파른 약세흐름을 보이더니 원·엔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인 900원대로 내려가기도 했다.

문제는 엔저원고 흐름이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올 4월로 예정된 일본의 소비세 인상과 추가적인 양적완화 가능성이 주요한 엔화약세 요인이다. 일본 경제 회생에 대한 회의론도 자리잡고 있다. 원화 강세 요인으로는 국내총생산(GDP)의 6%에 가까운 큰 폭의 경상수지 흑자를 들 수 있다. 원화에 대한 미국 등의 절상압력도 거세다.

엔저 효과로 이미 일본의 수출이 개선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엔화 표시 수출액이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분기부터 일본 기업들이 달러 표시 수출가격을 낮추면서 4분기에는 수출물량도 뚜렷이 늘어났다. 반면 한국의 수출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일본과의 수출경합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가운데 지난해 하반기 우리 수출은 당초 기대의 절반 수준인 3.8% 증가에 그쳤다. 결국 원·엔 환율 하락은 우리 상품의 세계시장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진다. 다만 J커브 효과로 인해 1년 정도의 시차가 나타나는데 원·엔 환율이 2012년 10월부터 하락하기 시작했음을 감안하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파급효과가 본격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올해 평균 전망치인 3%대 후반의 GDP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는 강력한 위협요인이다. 당장의 시장점유율 악화에 더해 엔화 약세로 수익성이 좋아진 일본 수출기업들이 투자를 늘려 경쟁력을 회복하는 효과도 간과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뚜렷한 엔저원고는 2000년대 중반(2004~2007)에도 나타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는 세계경제가 5% 가까이 성장하는 초호황기였다. 불리한 환율여건에도 소득효과에 힘입어 한국의 수출은 연평균 18% 늘어났으며 기업들의 매출과 수익도 꾸준한 성과를 보였다. 이에 비해 앞으로 세계경제는 당분간 3% 초중반대의 완만한 회복이 예상된다. 수출이 기껏해야 한 자릿수대 증가세에 그치기 쉬우며 특히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 중소기업 등 경쟁력이 취약한 대다수 기업들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전 엔저원고 절정기였던 2007년 상반기 원·엔 환율은 740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원·엔 환율이 1400~1500원으로 두 배나 치솟았다. 수출기업들은 환율의 축복을 즐겼고 한국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일찍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우리 경제는 원·엔 환율이 800원, 700원대로 떨어지는 환율의 저주가 다가올 수 있음을 각오하고 대응태세를 갖춰야 할 것이다.

엔저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원화 환율의 단기 변동성을 줄이는 노력을 기울이고 경우에 따라 금리인하 등 적극적 통화정책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한 원화 강세 압력을 낮추기 위해 경상수지 흑자를 줄여나가야 한다. 이때 환율 조정보다는 투자와 소비를 늘리는 직접적인 지출 조정이 흑자 축소에 훨씬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워낙 투자와 소비가 부진해 웬만한 원화절상으로는 수입이 늘어나기 어렵다. 최근 수년간 벌어진 미국과 중국 간의 글로벌 불균형 축소과정에서도 위안화 절상보다는 미국의 가계 및 정부의 지출 축소와 중국의 소비 중심 발전전략 전환이 주효했다. 성장세 확충뿐만 아니라 원화절상 부담 완화를 위해서라도 투자활성화는 최우선적인 정책과제가 되고 있다.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myshin@lger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