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히든챔피언] 등심·양지·우족…구입처 다변화, 최상품만 파는 '신뢰받는 장사꾼'

입력 2014-01-03 21:59
(3) 서울 중곡제일시장 '양평개군 토종한우'

한 마리 통째로 구입 안해…발품 팔며 부위별로 구입, 품질 좋아 고객만족도 높아
1만원어치 사면 할인쿠폰, 호응도 높아 충성고객 '부쩍'…'사골육수' 만들어 틈새공략도


[ 강창동 기자 ]
지난 3일 서울 중곡제일시장. 200m에 걸쳐 뻗은 시장 골목에 들어서자 ‘양평개군 토종한우’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은 토종 한우 품질이 좋기로 유명한 지역. 그런 곳의 지명을 딴 점포답게 매장 안에 손님이 붐볐다. 크기가 49.5㎡(약 15평) 정도인데도 월세가 다른 가게의 두 배인 220만원이나 한다. 하루 평균 매출이 200만원에 달한다는 게 과장은 아닌 듯했다.

○품질엔 양보 없어

양평개군 토종한우의 주인인 홍성진 사장(42)은 “‘신뢰받는 장사꾼’이 되려고 노력한 게 성공 요인”이라고 말했다. “최고의 고기가 아니면 공급하지 않고 가게를 찾는 손님에게 아낌없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원칙을 가져야 신뢰받는 장사꾼이 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손님이 상품에서든 서비스에서든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홍 사장은 그래서인지 상품의 질에 관한 한 양보가 없다. 그가 2005년 가게를 인수한 뒤 맨 처음 한 일은 서울 마장동 고기도매시장을 돌아다닌 것이었다. 그는 등심 안심 채끝 같은 구이류와 사골 잡뼈를 사는 곳을 달리 하고, 양지살등 국거리만 매입하는 곳도 거래를 따로 텄다. “고기를 통째로 구입해 직접 부위별로 나누면 고기의 질이 일정하지 않아 품질관리가 안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지만 특정 부위별로 좋은 고기만 골라 살 수 있어 손님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그는 말했다.

고기를 구입할 때나 판매할 때도 그만의 원칙이 있다. 원료육의 품질을 세분화해 상·중·하로 나눠 구입하고 판매하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그가 진열대에 내놓는 한우고기는 등급이 낮더라도 상(上)품만 쓴다. 1등급 하(下)품에 해당하는 엉덩이살보다는 3등급 상품에 해당하는 등심 부위가 낫다는 얘기다. 그는 “만약 구이용으로 1등급 등심만 판매하면 가격이 비싸 서민들이 사먹기 힘들고 1등급이라고 엉덩이살을 내놓으면 가격은 싸지만 질겨서 손님들이 불만을 터뜨릴 것”이라고 했다. 좋은 부위의 좋은 상품을 최우선으로 판다는 게 그의 경영 방침이다.

○틈새 상품 개발

중곡제일시장은 2005년 일찌감치 할인 쿠폰을 자체 발행해 소비자들이 시장 안에서 사용토록 했다. 1만원어치를 쇼핑하는 손님에게 100원짜리 할인 쿠폰을 증정, 사실상 1%를 할인해주는 것이다. 상인들은 중곡제일시장협동조합 사무실에서 장당 100원을 주고 수시로 쿠폰을 구입한다. 홍 사장도 하루 100장씩 사온다. “시장에서 정한 원칙은 1만원당 쿠폰 한 장이지만 저는 금액에 상관없이 한 장씩 줍니다. 회수율이 엄청 높은 걸 보면 손님들의 심리적 만족도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라고 그는 말했다. 박태신 중곡제일시장협동조합 이사장은 “143명의 조합원 중 매장 크기가 330㎡를 넘는 중대형 슈퍼마켓을 제외하고는 쿠폰을 가장 많이 가져가는 사람이 홍 사장”이라고 말했다.

홍 사장의 특기는 마케팅 솜씨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품을 차별화해 전통시장 정육점에서 보기 힘든 틈새 시장을 개척해내는 것도 그의 장기다. 여름에 도매상의 재고분을 대량 확보해 하절기와 동절기를 아우르는 ‘사골육수’ 상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포장용기에 들어 있어 소비자들이 집에 가져가 끓이기만 하면 된다. 양념 돈가스도 주부들에게 인기다. 고객들이 잘 안 사는 비선호 부위의 부가가치를 높일 목적으로 개발했다. 파우더가 묻혀져 있어 집에 가 튀기기만 하면 돈가스가 완성되는 가정 간편식이다.

○치밀한 기술 습득

홍 사장은 원래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건축기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준비하다 외환위기를 맞았다. 직장을 잡기 힘들어 손위 처남이 운영하던 정육점에 직원으로 들어간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1998년 당시 처남은 중곡제일시장에서 종업원 6명을 두고 한우정육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월급 100만원을 받으면서 밑바닥부터 일을 배워 나갔다. 처음 맡은 일은 가축의 피와 부산물로 어지러운 바닥을 청소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 매대의 부분육들을 정리정돈하는 일을 거들었다. 처남은 조금 시간이 지나자 뼈와 살을 분리하는 ‘발골작업’을 맡겼다. 발골은 칼질 기술에 따라 상품가격이 달라지는 핵심 기술이다. 좋은 부위의 결을 다치지 말아야 제값을 받을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처남은 홍씨의 성실함을 믿고 점포 경영의 대부분을 맡겼다. 2005년에는 처남 가게를 인수, 그가 직접 경영에 나섰다. 종업원으로 시작한 지 7년 만에 정육점 사장으로 변신한 것이다. 밑바닥 청소-부분육 정리-발골작업-구매-직원관리-재고관리-점포 총괄에 이르는 정육점의 노하우를 단계적으로 체득한 ‘준비된 사장’이 탄생한 셈이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