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쇼어링
선진국의 제조업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 정부는 앞다퉈 세금 혜택, 재정 지원 등 파격적인 선물 보따리를 내놓고 있다. 해외로 나간 기업이 다시 자국으로 돌아오는 ‘리쇼어링’을 장려하기 위해서다. -12월24일 한국경제신문
☞ 리쇼어링은 싼 인건비나 판매 시장을 찾아 해외로 진출한 기업들이 다시 본국으로 되돌아오는 현상을 뜻한다.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의 반대 개념이다. 이 리쇼어링이 요즘 세계 각국 정부의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국가 전략 차원에서 리쇼어링을 통해 세계의 패권을 되찾는다는 전략을 추진 중이어서 주목된다.
리쇼어링이 부상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로 실업자가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각국 정부는 경기를 부양하고 일자리도 늘리는 수단으로 대대적인 리쇼어링 정책을 펼치고 있다. 세금을 줄여주고 경영 활동에 장애가 되는 규제를 완화해 해외로 나간 자국 기업을 모셔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0년 제조업 부흥 정책인 ‘리메이킹 아메리카’로 리쇼어링의 방아쇠를 당겼다. 미국은 설비투자 세제 혜택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고, 공장을 옮기는 비용도 최대 20%까지 지원했다. 법인세도 35%에서 28%로 낮췄다.
일본도 제조업 부활 정책을 펴고 있다. 기업 규제 법안을 폐지하고 법인세를 40.69%에서 38.01%로 인하했다. 2015년에는 35.64%까지 낮추기로 했다. 그 덕분에 소니 샤프 캐논 도요타 혼다 등은 해외로 나가는 대신 자국 내 생산시설 확충을 택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국가들도 나섰다. 독일은 2007년 51.8%에 달하던 법인세를 38.7%로 낮췄고 금융위기가 터지자 29.8%로 재인하했다. 한국도 해외 진출 국내 복귀 기업(U턴 기업) 지원 제도라는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둘째는 기업들이 공장을 해외로 옮길 만한 유인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 기업이나 일류 기업들은 고비용을 해결하기 위해 인건비가 비교적 싼 중국이나 인도, 멕시코 등 신흥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했다. 그런데 이들 신흥국의 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생산기지를 굳이 해외에 둘 필요성이 줄어든 것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2005년 생산성을 감안한 중국 임금은 미국 임금의 22% 수준이었다. 하지만 10년 후인 2015년엔 44%까지 상승할 전망이다. 컨설팅·시장조사 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중국 인도 멕시코 등 신흥국 임금이 2030년에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 수준과 비슷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전문방송인 CNBC는 신흥시장과 선진국의 임금 갭(gap)이 줄면서 리쇼어링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중국과 인도 등에서 유턴한 미국 기업은 100여개에 이른다. GE 포드 GM 등 간판 기업들의 본국 회귀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애플과 구글도 중국 진출 약 10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온다. BCG에 따르면 매출 10억달러 이상인 미국 제조업체 최고경영자(CEO)의 37%가 중국에서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할 예정이거나 계획 중이다.
리쇼어링은 세계의 제조업 지도를 바꾸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에서 값싼 제품을 생산해 세계에 수출하는 구조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멕시코 경제가 좋지 않은 것도 리쇼어링 때문이다. 멕시코는 대미 수출 비중이 80%에 달할 만큼 미국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하지만 멕시코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타격을 입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리쇼어링은 제조업 패러다임이 바뀌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반면에 미국은 제조업이 커가고 일자리도 늘었다. 미국 주간지 타임은 “지난 3년간 제조업 분야에서 신규 일자리 50만개가 창출됐는데 이 가운데 3만5000개 이상이 리쇼어링으로 탄생한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기업들이 자국으로 되돌아온 데는 셰일층에서 값싼 원유나 가스를 뽑아내는 ‘셰일 혁명’도 큰 역할을 했다. 최근 미국의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은 776만배럴로 5년 전보다 50% 이상 늘었다. 셰일 가스와 오일 혁명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미국 제조업체들의 원가를 크게 절감시켰다. 또 3D(3차원) 프린터 등 미국 내 활발한 기술 혁신도 리쇼어링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EU, 부실은행 정리 급물살…한발 더 다가선 금융동맹
EU부실은행정리기금
유럽연합(EU)이 단일 부실은행 청산 체제에 합의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8일 보도했다. 이로써 EU는 2013년 초 목표로 제시했던 금융동맹 체제 완성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 외신들은 지난 9월 EU 단일 은행감독기구 설립 승인에 이어 두 번째 ‘이정표’에 해당하는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 12월19일 연합뉴스
☞ 그리스 등 일부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에서 비롯된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EU의 발걸음이 한발짝씩 전진하고 있다. EU 재무장관들은 지난달 18일 벨기에 브뤼셀에 모여 부실은행정리기구(SRM·Single Resolution Mechanism)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EU는 앞으로 10년의 준비 기간 동안 총 550억유로 규모의 부실은행정리기금(SRF·Single Resolution Fund)을 마련하게 된다. 국가별 부담액은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또 준비 기간 동안 부실은행을 정리할 경우 해당 은행과 각국 정부가 우선 부담하고 부족한 자금은 SRF나 유로안정화기구(ESM)를 통해 긴급 조달이 가능하도록 했다. ESM은 유럽판 IMF(국제통화기금)로 경제위기국에 자금을 지원하는 상설기구다.
FT는 “금융동맹 완성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고 해석했다. EU 금융동맹 체제 구축은 3단계로 추진되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내 은행들에 대한 단일 감독기구를 설립하고 이어 단일 부실은행 청산 체제를 구축하며 마지막으로 단일 예금보장 체제를 만드는 순이다. 단일감독기구 설립은 지난해 9월 합의된 바 있다.
이번 합의안은 금융동맹(Banking Union) 창설을 위한 의미있는 진전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프랑스 등은 부실은행 정리를 위한 자금조달 방식과 관련해 단일기금 방식을 지지해왔다. 반면 독일은 자국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며 국가별 개별적인 조달 방안을 주장해왔는데 독일 측 주장이 상당 부분 수용됐다. 또 기금관리도 독일 측 주장대로 별도의 위원회에 맡기기로 했다.
이로써 EU 통합은 통화동맹(단일통화 사용)에 이어 금융동맹(금융 부문 통합 관리·감독)으로 확대됐으며 마지막 단계인 재정동맹(조세권·예산집행권 이양, 공동 외교·국방·복지)을 남겨두고 있다. 물론 재정동맹까지 실현하기에는 각국의 내부적 정치 문제 등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유럽 합중국 창설’을 목표로 그동안 EU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재정 통합이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수도 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