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리포트
성형 옥외광고 지난해 3248건, 5배 이상 급증
공익·상업광고 비율 기준 모호…허위·과장 우려
[ 이지훈 기자 ] ‘딸아, 걱정 마. 이제 시집갈 수 있을 거야.’
여러 차례 다이어트에 실패한 김모씨(31·여)는 지하철 3호선을 이용해 광화문에 있는 직장을 오가는 40분씩의 출퇴근길이 영 편치 않다. 지하철 벽면과 천장, 승강장 주변을 도배하다시피 한 성형 광고 때문이다.
지하철 안에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열차정보안내시스템 화면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비만클리닉’ 광고를 지켜보는 것은 고역이다. 김씨는 “성형이나 다이어트를 꼭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는다”며 “거의 공해 수준”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공익광고 할당기준 없어
지하철 내 성형광고로 인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의료법 개정으로 버스·지하철 전동차 내부에 의료광고가 허용된 데 따른 것이다.
대한의사협회의 ‘의료광고 심의 현황’에 따르면 2011년 602건이던 성형외과 옥외광고는 지난해 3248건으로 5배 이상 급증했다. 지하철 전동차 내 액자형 광고, 모서리형 광고, 천장걸이형 광고는 물론 열차정보안내시스템 영상광고까지 성형외과 광고가 점령했다.
지하철 성형광고 홍수는 수익성 위주로 광고업체와 계약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서울메트로는 2009년 광고업체 (주)비츠로미디어와 지하철2호선 역사(1400여개) 및 전동차(6600여개)에 8000여대의 디스플레이 장비를 기부채납받고 2025년까지 소유·운영권을 주는 계약을 맺었다.
계약 내용에는 상업광고와 공익광고의 비율을 6 대 4로 한다는 내용이 들어갔지만 공익광고 할당 비율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출퇴근 시간 등 승객이 몰리는 시간에 성형외과 광고를 비롯한 상업 광고가 집중되는 이유다.
또 여러 광고가 교대로 등장하는 일반 ‘계좌광고’와 1회 운행을 마칠 때까지 1개 제품 광고만 계속 내보내는 ‘편성광고’를 함께 인정했다. 편성광고가 들어간 전동차를 타면 김씨처럼 출근시간 내내 눈을 감고 있지 않는 한 성형외과 광고를 봐야 한다.
○실내광고 심의기준 만들어야
지하철 전동차 내 성형 광고는 법적 규제 대상도 아니다. 현행법상 대중교통시설의 의료 광고는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법’에 따른다. 하지만 옥외가 아닌 실내에 해당하는 객차 내부 광고는 관련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검증받지 않은 성형 전후 사진이 버젓이 게시된 광고물에 대한 허위과장 광고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단속이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광고 메시지조차 모호한 ‘감성형’ 성형외과 광고도 등장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보 없이 감정에 호소하는 성형외과 광고가 부쩍 늘었다”며 “이는 노골적인 광고보다 주목을 끌어 잠재 고객을 늘리는 효과가 있지만 사회적으로 성형을 부추기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하철 성형외과 광고를 적절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해당 지방자치단체들은 법 개정 건의나 조례 개정 추진 등에 나서지 않고 있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 측은 “자체 심의규정으로 선정적인 광고물 등을 제재하고 있어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법적으로 허용된 광고를 규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현재까지 특정업종 광고에 대한 규제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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