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금연 · 결혼 · 영어능통…연초의 '다짐'…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올해도 '다 짐'

입력 2013-12-23 21:00
수정 2013-12-24 04:39
2013년 목표 '연말정산'

두 글자 '싱글' 세 글자 '노총각' 네 글자론 '독거노인' 신세
아~ 내년엔 꼭 벗어나리

1년치 수강료 미리 내고 결연하게 시작한 자기계발
고작 4일 나가고 생돈만 날려


[ 김병근 / 박신영 / 전예진 기자 ]
대형 광고회사 E사에 다니는 배 과장(36)은 알아주는 애연가다. 하루에 두 갑이 넘는 담배를 피운다. 혹시나 담배가 떨어질까 봐 가방에 여분으로 한두 갑씩을 항상 넣고 다닌다. 해외 출장길에 비행기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다 적발돼 경유지에서 쫓겨 난 경험을 ‘무용담(?)’처럼 자랑할 정도다.

지난 3월 결혼한 그의 아내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배 과장이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프러포즈를 하며 담배를 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지금은 피우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집에 들어가기 전 양치하고 손과 얼굴을 깨끗이 씻는 등 ‘완전범죄’를 위한 눈물겨운 노력 덕분이다. 종종 옷에서 담배 냄새가 나지만 “저녁 자리에서 동료와 선배들이 피워서 그렇다”는 말에 그의 아내는 쉽게 속아 넘어간다. 아내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에 배 과장도 맘이 편치만은 않다. “노력을 안 해본 게 아닙니다. 금연 보조제부터 전자담배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봤는데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에요. 건강을 위해서라도 끊어야 하는 데 걱정입니다.”

올초 굳게 결심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씁쓸해하는 직장인은 배 과장뿐만이 아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또는 바쁘다는 핑계로 자신이나 타인에게 한 약속을 못 지켜 후회하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20대 중반女 찾는 30대 후반男

중견 가전기업 마케팅팀에서 일하는 K씨(39·남)는 집에서 불리는 호칭이 세 가지다. 두 글자로는 ‘솔로’, 세 글자로는 ‘노총각, 네 글자로는 ‘독거노인’이다. 3년 넘게 사귄 애인과 재작년 말 헤어진 뒤 줄곧 혼자 지내고 있는 아들을 못 마땅히 여겨 희수(喜壽·77세)를 바라보는 아버지가 붙여 준 별명이다.

그도 할 말은 있다. “지금부터 열심히 찾아 다니지 않으면 금세 마흔을 넘긴다”는 지인들의 충고에 따라 지난해 결혼정보업체에 가입, 각종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소개팅을 주선해 달라고 조르는 열성도 보인다. 외모와 스펙은 물론 성격도 괜찮은 편이어서 만남은 곧잘 성사되지만 딱 거기까지다.

‘외동딸은 싫다’ ‘인상이 너무 강하다’ ‘집이 멀다’ ‘재미가 없다’ 등 거절하는 이유도 가지가지다. 한번은 자신의 여동생을 소개해준 친구한테 “외모가 내 취향이 아니다”고 말해 사이만 소원해졌다. 올 들어서만 100번 가까이 소개팅 등 만남을 가졌지만 한 이성과 한 번씩 만난 경우가 태반이다. 그 이상 만난 경우도 채 한 달을 못 갔다. 아버지와 “내년 봄에는 반드시 결혼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소개팅도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그가 안타까워 회사 내 절친 P씨가 소개팅을 해주겠다며 얼마 전 이상형을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에 P씨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나이는 생각도 안 하고 대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된 24~25살 여성을 찾는 게 말이 됩니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얘기를 꺼낸 건데 병이 아주 심각한거죠. 저런 병은 절대 못 고칩니다.”

○화려한 싱글女, 독립 석 달 만에 짐싸

대기업 직장생활 4년차인 이 대리(31·여)는 올초 얼떨결에 독립했다. 아버지의 잔소리가 화근이었다. 주말에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는데, 원하는 프로그램을 못 보게 된 아버지가 테이블 위의 빵 봉지를 가리키며 “먹었으면 치워야지 서른이나 돼서 뭐하냐”고 성을 낸 탓이다. 서러워진 이씨는 “부서이동이 있어 야근하며 출퇴근하기 힘들다”는 핑계를 대고 자취를 허락받았다.

3년간 직장생활을 해서 모든 돈으로 강남에 작은 오피스텔을 얻은 이씨는 화려한 싱글 생활을 마음껏 누렸다.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을 원 없이 보고 밤늦게까지 술을 먹어도 눈치 볼 사람이 없어 마냥 좋았다. 남자친구도 금방 생길 것 같았다. 친구들은 “요즘 남자들의 이상형 2위가 예쁜 여자, 1위가 혼자 사는 여자”라며 부러워했다.

그러나 행복은 채 석 달을 못 갔다. 자기관리가 소홀해지면서 자취 3개월 만에 몸무게가 7㎏이나 불었다. 저녁에 집에서 혼자 먹는 밥도 지겨웠다. 빨래도 2~3주마다 세탁소에 맡기느라 1주일 동안 같은 옷을 두 번 이상 입는 날도 있었다. 늦잠을 자다가 화장을 제대로 못 한 때도 적지 않아 스타일도 엉망이었다. 이씨는 “독립 생활 3개월 만에 짐을 싸서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며 “1년 동안 화려하게 싱글 생활을 즐기고 결혼하려던 목표가 물거품이 됐다”고 아쉬워했다.

○1년 등록한 학원, 고작 4일 나가

직장인들이 연초에 가장 많이 세우는 목표가 자기계발이다. 유통 대기업에 다니는 P과장(38·남)은 올초 야심차게 자기계발 계획을 세웠다가 생돈 150만원만 날렸다.

사연은 이렇다. 업무 활용도가 높은 영어를 제대로 해보겠다며 올초 서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영어학원을 찾아갔다. “1년치 수강료를 한꺼번에 내면 매달 등록하는 것에 비해 한 달에 10만원가량 절약할 수 있다”는 상담사의 말에 솔깃한 P과장은 1년치를 끊었다. 1년만 열심히 하면 직속 후배인 ‘유학파’ 이모 대리 부럽지 않을 정도로 영어를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신이 났다.

그러나 P과장이 올해 내내 학원에 간 날은 고작 4일뿐이다. 학원 등록 직후 회사에서 가장 바쁘기로 악명 높은 전략부서로 발령이 난 게 화근이었다. 최장 3개월 동안은 ‘학원 휴학’이 가능했지만 자신과의 약속이 올가미가 됐다. “내일은 꼭 가야지”하며 미루는 사이 1년이 훌쩍 지나 버렸다. 학원 수업이 밤 10시까지 있었지만 9시를 넘겨 퇴근하는 날이 많았다. 좀 일찍 일이 끝나는 날엔 쉴 생각으로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P과장은 “1년치 수강료를 한 번에 낸 것이 너무 아깝다”며 “내년에는 한 달씩 학원을 끊어야겠다”고 말했다.

김병근/박신영/전예진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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