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근로자 보호 위한 '고용간주'
오히려 근로 불안정·경영위축 초래
고용현장에 맞게 전면 개선해야"
이정 < 한국외국어대 법학 교수 >
계약의 자유 및 사적 자치는 자유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어떤 명분 아래에서도 그 본질을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 헌법의 이념이다. 그런 점에서, 옛 파견법이 파견근로자를 2년 이상 사용한 경우에는 사용사업주로 하여금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간주하는 소위 ‘고용간주조항’은 근로자와 사용자 간의 사적 자치 및 계약자유의 가치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런 배경 아래에 고용간주조항은 2007년에 고용의무조항으로 개정됐으나, 여전히 관련 소송이 다수 진행 중이고, 이 조항에 대한 위헌소송이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이다.
고용간주조항은 흔히 근로자 파견근무의 장기화·상용화를 방지해 파견근로자의 직접 고용을 유도함으로써 고용안정을 꾀하는 데 입법 목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파견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사용사업주는 2년이 지나면 무조건 파견계약을 해지할 수밖에 없어, 파견근로를 통해 경험을 쌓으려는 근로자들의 경력단절 및 고용불안을 초래하는 부조리가 발생하고 있다.
일본은 고용청약 신청간주규정을 새로 도입해 2015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한국의 고용간주조항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한국과는 달리 계약자유의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용사업주가 과실 없이 파견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경우에 적용되지 않고, 소급해 근로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으며, 이마저도 1년이 경과하면 간주의 효과가 사라지도록 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한국과 달리 고용간주 시 적용된 근로조건을 파견계약에서 정한 근로조건에 따르도록 명확히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법에서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2년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지에 관한 많은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대법원은 2008년 9월의 소위 ‘예스코판결’에서 ‘근로관계의 기간은 기한의 정함이 있는 것으로 볼 만한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기한의 정함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고 설명한 바 있으나, 이는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역차별’의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더욱이 고용간주조항은 현실적으로 도급과 파견을 구분하기가 법률전문가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도급인들에게 예측할 수 없는 손해를 끼칠 수 있다. 2010년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 중 41.2%가 사내하도급을 활용하고 있고, 그 수는 32만6000명에 이른다. 수급인이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도급업무를 수행하는 사내하도급에서 도급인과 수급인은 계약 이행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도급인은 수급인의 근로자를 최대한 배려할 책임을 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협력과 배려가 도리어 근로자 파견의 징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은 언제 불법파견이 될지 모르는 불안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일본의 파견법은 한국에 비해 계약자유를 침해하는 정도가 현저히 낮다. 그런데도 일본 규제개혁회의는 최근 근로청약신청간주조항이 소위 도급과 파견의 구분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과잉 ‘간주’가 돼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예측할 수 없는 손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폐지를 포함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고용간주조항이 위헌의 소지가 있어 개정한 이상, 더 이상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지 않도록 방치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머잖아 우리 헌법재판소가 이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한다. 일본의 파견법 개정논의의 시사점을 살펴볼 때다.
이정 < 한국외국어대 법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