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T-50IQ와 자이툰부대

입력 2013-12-17 21:31
수정 2013-12-18 03:57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9년전 이맘때 자이툰부대를 방문했다. 이 부대의 사막길 3000리 진군기록영상에 특히 가슴이 컥컥 막혔던 기억이 새롭다. 국군 1175명은 2004년 9월 초 쿠웨이트를 출발, 18일 만에 아르빌에 진출했다. 18일간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전쟁국을 돌파했던 부대이동작전이었다. 이후 자이툰부대는 활발한 평화재건활동을 수행했다. 전쟁이 할퀸 이라크인들 치료로 시작했다. 치안에 나섰고 태권도도 가르쳤다. 나눠준 축구공은 희망 심기였다. 2008년말 자이툰부대는 의료장비, 차량까지 3만6472점을 기증한 뒤 51개월만에 귀환했다.

사상최대 수출, 전투기 경쟁력 +α

이라크로 경공격기 T-50 24대를 수출한다는 소식에 자이툰부대가 오버랩된다. 국군이 평화재건에 기여한 중동 빈국이 자주국방에 나섰다는 것부터가 대견하다. T-50IQ기가 한국 방위산업 역사상, 국산 항공수출로도 최대로 수출되는 건 물론 자체의 국제경쟁력 때문일 것이다. 기술력과 가격 등에서 그만큼 강점이 확보됐다. KAI의 집념과 관계기관 지원의 합작품이다. 이라크 정부가 예산의 4%를 넘는 막대한 국방프로젝트를 작은 옛 인연 때문에 정했을 리도 없다. 더구나 경쟁국인 영국 러시아 체코는 한가닥씩하는 항공 강국이다. 우리도 8조원 KFX사업에서 혈맹이라고 해서 유로파이터 대신 미국산을 먼저 찍진 않았다.

그렇긴 해도 자이툰부대의 성공적인 민사작전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다만 그런 요인은 설사 있어도 서로가 굳이 말하지 않을 뿐이다. 누구나 한번쯤 신세지면 가슴에 남겨 놓는 법이다. 베푸는 쪽이야 나 좋아서 한턱 쏜 것이라고 해도 받은 쪽은 다르다. 개인이든 국가든 세상 이치다. 슈퍼태풍 하이옌이 강타한 필리핀에 복구 부대를 보내자고 했을 때도 긴 이유가 필요 없었다. ‘6·25전쟁 때 파병국’이면 족했다. 터키와는 왜 형제국이 됐나. 그쪽 청춘들이 이 땅에서 피흘렸던 거다.

파병은 국가전략, 적극 내보내야

쓰임새대로 다 좇자면 이 세상에 여유자금이란 건 없다. 천하갑부 빌 게이츠도, 국내 제일 삼성전자도 돈에 관한 한 원하는 대로 다할 순 없다. 정부예산은 더더욱 늘 부족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쪼개쓰더라도 쓸 곳엔 써야 한다. 국제평화유지와 국가안전보장에 기여한다면 우리 군도 적극 보내야 한다. 소말리아 해역의 청해부대를 비롯해 지금 15개국에 1163명이 파병돼 있다. 더 나가도 좋다. 그래서 장기간 평화군대의 뱃살도 좀 빼고 인류평화라는 대의에도 적극 기여할 필요가 있다. 꼭 대가를 염두에 두자는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공짜도 없다.

미국은 파병을 넘어 평화봉사단을 내보냈다. 일본도 동남아에 거듭 돈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 도쿄의 일+아세안회의에서 10개국에 3조원을 또 지원키로 했다. 중국의 방공구역 견제차원이라 한다.

자이툰 파병논란 때 노무현 정부는 그렇게 민망해했다. 당시 대통령은 “내가 파병하고 싶어 서명하겠나”라고 거듭 변명했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명분이 분명하고 국익에 부합했다. 언제까지 중국의 팽창에 내심 긴장하고 일본의 퇴행에 분노만 할텐가. 틈새국가인양 좁게 살지 말자는 얘기다. 30~40년 전 종합상사들이 맨손으로 내달렸던 것만큼 해보자. 너무 엄격한 파견연장은 좀 쉽게 하고, 필요하면 파병법도 새로 만들어 법적근거도 명확히 해두자.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