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스위스社 CEO 올리버 엡스타인 "명품시계 값에 거품 끼어있다"

입력 2013-12-15 22:15
수정 2013-12-16 05:23
인터뷰

"한정판이라며 수천개 찍어 소비자에게 부담 전가"

"독창적 디자인과 합리적 가격으로 승부할 것"


[ 임현우 기자 ] “명품 시계회사들이 매년 값을 올리는 것은 마케팅을 위해 거품을 만드는 것일 뿐이죠.”

연례행사처럼 값을 올리는 명품시계 업계에 명품시계 브랜드의 최고경영자(CEO)가 돌직구를 던졌다. 스위스 유명 시계회사 중 하나인 ‘크로노스위스’ 오너이자 CEO인 올리버 엡스타인(38·사진)이 주인공이다. 크로노스위스의 간판모델인 레귤레이터 탄생 30주년 기념행사를 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마케팅을 위해 고가정책을 펴는 것은 결국 소비자들에게 부담만 지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엡스타인은 “가격이 5년 새 두 배로 뛴 시계도 있는데 사실 그건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며 “매장을 늘리고 마케팅하는 데 투자한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업체의 얄팍한 상술을 꼬집기도 했다. “한정판을 만들면서 2000개씩 찍어내는 곳도 있는데 이게 어떻게 한정판인가”라고 비판했다.

결혼 예물뿐 아니라 남성들의 패션 아이템으로 고급 시계가 인기를 끌면서 국내 명품시계 시장은 해마다 10~30%씩 성장하고 있다. 롯데, 현대, 갤러리아 등 백화점들도 시계 매장을 경쟁적으로 늘렸다. 이런 가운데 많은 시계 브랜드는 ‘본사 지침’을 이유로 가격을 해마다 5~10%씩 올리고 있다. 20~30대가 많이 찾는 엔트리급(입문용) 시계는 몇 년 전만 해도 300만~500만원이던 것이 지금은 500만~1000만원이 된 경우가 적지 않다. 원자재 가격, 환율, 관세 등과 무관하게 이미지 고급화를 노린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크로노스위스는 1982년 설립된 회사. 리치몬트, 스와치,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등 대형 명품그룹에 편입된 많은 시계 브랜드와 달리 ‘독립 경영’을 고수하고 있다. 국내에선 700만~1000만원대 제품이 가장 많이 팔리는데, 수년째 가격을 동결하고 있다. 스위스 기업가인 엡스타인은 지난해 이 회사를 인수해 CEO를 맡았다. 그는 “회사를 인수할 때 브랜드 고유의 디자인 철학과 독립 경영 원칙을 지키기로 창업주와 약속했다”고 밝혔다.

엡스타인은 “크로노스위스의 강점은 자신만의 독특한 ‘디자인 언어’를 갖고 있고, 그 정체성을 뚝심 있게 지키는 독립 브랜드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기 실적을 높이기 위해 유행을 좇아 이런저런 디자인을 내놓는 다른 브랜드와 달리 장기 비전을 갖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엡스타인은 출시 30년을 맞은 이 회사 간판 모델 ‘레귤레이터’의 신상품과 30년 전 첫 제품을 함께 보여주면서 “디자인이 조금씩 진화했지만 다이얼(시계판)의 고급스러운 무늬와 독특한 크라운(용두) 같은 핵심 DNA는 그대로”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레볼루션’(혁명)이 아니라 ‘에볼루션’(진화)을 추구한다”며 “뛰어난 디자인의 제품을 합리적 가격에 제공한다는 장점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