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휴대폰까지 스며든 '탈세 브로커'들

입력 2013-12-15 21:37
수정 2013-12-16 04:18
탈루세금 500억 부과


[ 김선주 기자 ]
의류판매업자 A씨는 지난해 상반기 100억원 상당 의류를 사들여 150억원에 팔았다. 부가가치세는 매출의 10%인 매출세액(15억원)에서 매입액의 10%인 매입세액(10억원)을 공제하는 방법으로 산출하므로 A씨의 부가가치세는 5억원이었다. A씨는 자료상 B씨에게 1000만원을 건네고 20억원 상당의 가짜 매입세금계산서를 얻었다. 매입액을 100억원에서 120억원으로 둔갑시킨 A씨는 결국 당초 내야 했던 부가가치세보다 2억원 적은 3억원만 세무 당국에 납부했다.

대검찰청 반부패부(부장 오세인 검사장)는 지난 9~11월 국세청과 함께 이 같은 자료상 범죄 행위에 대한 합동 단속을 벌여 2조1293억원 상당의 허위 세금계산서 발급 행위를 적발, 58명을 구속기소하고 12명을 불구속기소했다고 15일 발표했다. 검찰은 이들 자료상에게 탈루 세금 500억원가량을 1차로 부과했다.

○골드바에서 폐동·사료·휴대폰 다양화

자료상은 유령업체를 세운 뒤 다른 사업자에게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급해줘 탈세를 돕는 전문업자를 말한다. 검찰에 따르면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순도 95.9% 이상의 금괴인 금지금 관련 자료상이 기승을 부렸지만 최근에는 폐동, 석유 관련 자료상이 늘고 있고 사료, 휴대폰 관련 자료상도 등장했다.

검찰 관계자는 “폐동은 2008년 이후 가격이 많이 오른 데다 소규모 고물상에 의해 주로 수집돼 무자료 거래가 빈번하다는 점에서 자료상 범행에 많이 쓰였다”고 설명했다.

허위 세금계산서를 한번 더 세탁하려고 또 다른 유령업체를 설립해 ‘바지사장’을 앉히는 등 범행 수법도 날로 조직화하고 교묘해지고 있다.

평택지방검찰청과 중부지방국세청 합동수사에 적발된 자료상 C씨 D씨 등은 가짜 세금계산서 세탁을 위한 ‘간판업체’를 세운 뒤 이 업체가 자료상 업체 몇 개를 관리하는 피라미드 형태의 전문 조직까지 갖췄다. 이들은 바지사장, 현금인출, 자료조작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 1000억원대의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다.

부산지방국세청은 3561억원 상당의 세금계산서를 발행한 뒤 범죄수익으로 벤츠 등 고급 승용차를 구입한 E씨, 가짜 세금계산서 발행 대가로 3억원을 받고 이를 유흥주점 등에서 탕진한 F씨 등을 구속했다.

○부가세 근간 해치는 중대 범죄 엄벌

부가가치세는 전체 내국세의 30%를 웃돌아 단일 세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자료상 범행은 부가세의 근간인 세금계산서 제도를 해치는 중대 범죄라는 것이 과세당국의 판단이다. 대검과 국세청이 지역별로 단속 중점 검찰청·국세청을 지정해 합동수사에 나선 이유다. 국세청은 자료상을 단속해 2009년 4649억원, 2010년 5906억원, 2011년 4717억원, 2012년 4734억원 등 탈루 세액에 대해 세금 부과 처분을 내린 바 있다.

대검과 국세청은 향후 상설 협의체를 구성해 자료상 등 고질적인 조세 사범을 신속하게 수사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대검은 수사·입증에 오랜 기간이 필요한 자료상 범죄의 특성을 감안해 현재 5년인 공소시효를 연장하고, 자료상 범죄를 ‘자금세탁행위 처벌 및 범죄수익 환수’ 대상 범죄로 규정하는 내용으로 ‘범죄수익 은닉규제 처벌법’ 개정 작업도 병행키로 했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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