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스마트폰이라도 언제 어디서 이를 구입하는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은 이제 거의 상식처럼 돼 버렸다. 정부의 보조금 규제를 피해 주말이나 새벽에 반짝 보조금을 지급했다가 주중이나 낮에는 다시 제값을 받는 변칙 영업 행태도 다반사다. 이 같은 차별적 보조금 지급 행위를 제지하기 위해서 이동통신사에 대한 영업정지 정책에 이어 휴대폰 제조사의 보조금에도 규제를 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하 단통법)이 바로 그것이다. 법안은 제조사와 이통사의 보조금과 장려금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것으로 제조사는 단말기에 지급하는 장려금 규모와 판매량을 공개해야 한다. 이통사도 각 단말기에 붙는 보조금 규모를 구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또 약정에 따라 특정 요금제를 쓰도록 강요하지도 못하도록 하고 있다.이 법안에 대해서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견해가 있는 반면 기업 영업 비밀을 부당하게 공개하는 것이라며 부당하다는 반론도 있다. 단통법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투명하고 정확한 가격정보 공개해야"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기형적인 단말기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 단통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래부 관계자는 “이 법안은 소비자에게 투명하고 정확한 가격정보를 제공해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게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재 방통위원장도“지금까지는 보조금과 관련해 이동통신사만 처벌하다 보니 균형이 맞지 않았다”며 “제조사에서 장려금 정보를 받는 것은 시장 제조사와 이통사의 책임을 구분하기 위한 것일 뿐 밖으로 유출될 일이 없다”고 강조했다. 단말기 제조사 중에서도 LG전자, 팬택은 찬성하는 편이다. 다만 시행과정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할 필요는 있다는 입장을 편다.
이동통신 3사는 단통법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형희 SK텔레콤 부사장은 “단통법의 기본 취지가 소비자를 위한 것으로 통신사업자가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부사장은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지만 결국은 소비자 중심의 단어와 논리이기 때문에 통신사업자가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표현명 KT 사장은 “피처폰 시절 단말기 가격은 30만원대였지만 스마트폰이 들어오면서 90만~100만원대로 3배나 비싸졌다”며 “국내 단말기 시장은 시간·지역별로 전부 달라 소비자 신뢰를 잃어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필계 LG유플러스 부사장은 “이용자 보호라는 취지에 이견이 없고 과도한 마케팅으로 이용자의 피해를 막자는 단통법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반대 "판매량 장려금은 영업 비밀에 속해"
법안에 가장 반대하는 것은 국내 휴대폰 시장의 70%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삼성전자다. 삼성 측은 판매량 장려금 규모 등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데 이를 정부에 제출하는 것은 과잉규제라는 입장이다.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은 관련 간담회에서 “영업정보가 유출돼 국내외 판매장려금 차이가 해외시장에 알려지면 삼성은 심각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며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강조했다. 단통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휴대폰 강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관련 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애플 등 외국의 단말기 제조사에 대해서는 유사한 제재를 가할 수 없는 게 현실인데 국내 업체만을 대상으로 이런 규제를 하게 되면 결국 역차별이 된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단말기 제조사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이미 규제를 받고 있는데 여기에 단통법마저 통과되면 이중 규제를 받는다며 부당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다른 전자제품과의 차별성을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 모든 전자제품이 유통망에 따라 서로 다른 가격으로 거래되는데 유독 휴대폰만 제품 가격을 단일화하고 장려금 규모를 공개하는 것은 지나친 규제라는 것이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실제 휴대폰 출고가를 낮춰 봤지만 소비자들의 실 구매가격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며 “낮춘 출고가 만큼 이통사들이 자체 보조금 규모를 줄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판매점들 중에도 시장 위축과 대형 유통사들의 판매망 장악을 우려해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생각하기
국내 휴대폰 유통구조에 문제가 적지 않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치 비밀 접선이라도 하듯, 온라인 카페 등을 통해 주말 밤에 반짝 이뤄지는 할인 판매에 동참하는 사람들과 오프라인 매장에 들러 그냥 휴대폰을 사는 사람이 내야 하는 휴대폰 가격은 천자만별이다. 단지 똑같은 모델의 단말기 가격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요금제와 각종 약정 등에서도 상당히 큰 차이가 난다. 물론 모든 물건은 언제 어느 곳에서 팔리느냐에 따라 설사 동일한 제품이라도 가격이 달라진다. 하지만 휴대폰 유통 시장이 유달리 비정상적이라는 점은 아무도 부인하기 힘들다.
문제는 시장이 이렇게 된 근본적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다. 정부는 이동통신사와 제조사의 보조금 정책이 시장을 이렇게 만든 주범이라는 생각인 것 같다. 하지만 더 큰 원인 제공은 정부가 해왔다. 바로 통신요금 인가제가 그것이다. 현재 통신시장에서 1위 업체인 SK텔레콤은 정부로부터 요금 인가를 받아야 한다. KT와 LG유플러스는 신고 사업자이지만 SK텔레콤이 요금 인가를 받으면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내용으로, 거의 담합 수준으로 요금제를 내놓고 있다. 이런 요금 인가제야말로 통신사 간 요금 경쟁을 막고 결국 보조금 경쟁으로 내모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요금 인가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오직 한국에만 있는 후진적 규제다. 정부는 이런 규제부터 폐지해 요금경쟁을 시장에 맡기는 일부터 하는 게 순서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