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러블기기 성공, 해답은 패션에 있다

입력 2013-12-13 06:58
LGERI 경영노트 - 이종근 <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lee.jongkeun@lgeri.com >

개성 충족시키는 패션용품, 기술·기능적 측면에만 매달려
제품 개발 추진하면 실패


‘입는 정보기술(IT)’로 불리는 웨어러블기기(wearable device)가 시장에 나오면서 모바일 산업도 새 국면에 들어섰다. 구글은 구글글라스라는 안경 형태의 기기를 출시한 뒤 다양한 신개념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손목시계 형태인 스마트워치, 건강관리용 팔찌인 헬스케어밴드도 큰 관심을 끈다.

이 같은 움직임을 보면 웨어러블기기는 IT업계의 미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IT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산업의 관점에서 웨어러블기기 시장을 바라볼 때가 됐다. 웨어러블기기 시장은 기존 모바일기기 시장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웨어러블기기는 기존 모바일기기와 완전히 다른 제품으로 분류된다. 모바일기기 시장에서는 어느 정도 정해진 틀 안에서 더 좋은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경쟁한다. 하지만 웨어러블기기 시장은 정답이 없다.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이른바 ‘상자 밖(out of the box)’ 경쟁을 펼쳐야 한다.

손목에 차는 기기만 하더라도 그 형태는 다양하다. 시계에 작은 디스플레이를 달 수도 있고, 휘어지는 플렉서블(flexible) 화면을 사용해 손목 전체를 휘감을 수도 있다. 일반적인 디스플레이 화면 대신 발광다이오드(LED) 조명만 있는 밴드, 아무런 표시를 출력하지 않고 센서 기능만 장착한 밴드도 가능하다. 웨어러블기기가 손목뿐만 아니라 온몸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앞으로 얼마나 다양한 형태가 나올지 상상이 안 될 정도다.

웨어러블기기는 기존 모바일기기와 달리 외부에 드러내놓고 다니게 된다. 스마트폰은 보통 주머니나 가방에 넣고 다니기 때문에 그날 패션과 상관없이 하나의 기기만 있으면 충분하지만, 웨어러블기기라면 얘기가 다르다.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패션용품이 될 수 있다. 미래엔 나와 같은 웨어러블기기를 착용한 사람을 거리에서 볼 때 다소 민망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오늘날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발견했을 때 드는 기분과 비슷할 것이다.

웨어러블기기를 만들 때는 사용자들의 이 같은 느낌까지 고려해야 한다. 기존 모바일기기처럼 소품종 대량생산으로 만족한다면 사용자들의 개성과 취향을 충족시키기 어렵다. 개인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다품종 소량생산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소수의 대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통해 기기를 제조·판매해 왔지만 앞으로는 그 전략이 먹히지 않을 수도 있다.

새로운 시장에서 ‘게임의 법칙’은 어떻게 될까. 기존 IT시장에서와 같이 혁신적인 기술과 기능 중심으로만 접근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패션용품에 무리하게 여러 가지 기능을 넣는다고 끝이 아니다. 욕심 부리다가는 제품 디자인을 해치고 배터리 등 핵심 성능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 꼭 필요한 기능만 멋진 디자인에 담아내는 것이 핵심이 될 수도 있다.

이제까지와 다른 주인공이 나타날 가능성도 높다. 기존 IT시장의 타성에 젖지 않은 수많은 스타트업 기업과 중소기업들이 패션업계와 맞물려 시장을 형성할지도 모른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사물인터넷(IoT) 세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IT 기업과 디자인, 패션을 연계하고 신생기업 간 교류를 통해 시너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종근 <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lee.jongkeun@lgeri.co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