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정동 기자 ] "고추장은 한 숟가락만 넣어도 되겠지?" "돼지고기가 덜 익은 것 같지 않아?"
지난 9일 서울 중구 필동에 위치한 샘표식품 본사. 2014년도 대졸신입사원을 선발하기 위한 면접시험이 진행됐다. 하지만 분위기는 여느 회사와 사뭇달랐다. 요리면접이었기 때문이다.
2002년 샘표에서 처음 시작한 이 면접은 일반면접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지원자들의 협업 능력, 위기 대처법, 성향 등을 확인하기 위해 마련됐다.
올해로 열두번째를 맞는 요리면접은 박진선 대표가 직접 지원자들의 요리를 일일이 맛 보고 질문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이날 면접 대상자들은 마케팅 직군 지원자들로 고기, 해산물, 면 등의 재료를 무작위 뽑아 샘표식품의 조미료와 함께 얼마나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는지를 집중적으로 평가받았다.
기자가 직접 이날 요리면접 현장 속으로 들어가봤다. 극심한 청년 취업난 속에서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합격 '레시피'다.
◆ "돌발상황에서의 '침착성'은 면접관들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는다"
요리면접은 팀 구성, 콘셉 회의(15분), 요리 및 설거지(65분), 발표 준비(30분), 발표(5분)로 구성됐다.
소고기, 돼지고기, 해산물, 면 등을 주재료로 받은 각 조는 간장, 고추장, 된장 등 샘표식품의 장류를 활용해 요리를 시작했다. 마케팅 직군 지원자들 답게 어떤 소비자층을 대상으로 요리를 만들 것인지, 어떤 부분을 어필한 것인지 등을 상의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면접 초반 지원자들은 면접관들이 옆에서 평가하고 있어서였는지 긴장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샘표식품 관계자는 "지원자들이 초반에는 허둥대거나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이내 곧 긴장이 풀리면서 성격이 드러나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각 조들이 요리면접에 임하는 전략은 달랐다. 재료 손질과 조리, 양념, 설거지를 각각 분담하는 팀이 있는가 하면, 요리에 능숙한 팀원 한 명이 리더십을 발휘해 조원들에게 지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샘표식품 관계자는 "요리 과정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정답은 없다"며 "다만 팀원들과 협업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인지, 동료들 옆에서 조용히 뒷받침하는 사람인지 등을 살펴본다"고 말했다.
그래도 면접관들에게 '이런 지원자는 꼭 뽑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경우가 없느냐'고 재차 물었다. 한 면접관은 "몇 해 전 튀김 요리를 하다가 뜨거운 기름이 쏟아진 적이 있었다"며 "다들 당황해하고 있던 순간에 한 여성 지원자가 냅킨으로 침착하게 수습하던 모습이 호평을 받아 최종 합격까지 이어졌다"고 귀뜸했다.
반면 면접관들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든 사례도 있었다.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나이, 학번 등을 내세우며 위계 질서를 강요한다거나 간장을 마시는 등 '호기'를 부리는 지원자들은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고 전했다.
샘표식품 관계자는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았다고 해서 팀원들에게 얼굴을 붉힌다거나 아예 입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면접관들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 기업-지원자, 요리면접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 높여
요리가 완성되면 각 팀별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한다. 박 대표 이하 임원들에게 자신들이 준비한 요리의 의미와 마케팅 포인트를 어필하는 과정이다.
박 대표가 지켜보는 앞에서 한 지원자의 발표가 시작됐다.
"저희가 만든 것은 서양의 스파게티 면과 샘표식품의 고추장을 활용해 만든 퓨전 요리입니다. 고추장은 한국의 대표적인 소스이지만 외국인들이 먹기에는 너무 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매운 맛을 줄이고 스파게티 면을 섞어 외국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내 "타깃층이 불분명한 것 같은데 누구를 위해 음식을 만들었나?" "홍보는 어떠한 콘셉으로 할 것인가?" "떡볶이 맛과 비슷한 것 같은데 창의성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등 면접관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들었다.
한 면접관은 "요리를 할 때는 소극적으로 참여하다가 임원들 앞에서 주도적으로 말하는 지원자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며 "면접관들이 어느 한 부분만을 보고 평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콘셉 회의 때부터 발표 때까지의 전 과정을 꼼꼼히 기록한다"고 설명했다.
면접을 마치고 나온 지원자들은 저마다 아쉬움을 털어놨다.
지원자 이규은 씨(24·여)는 "음식을 하는 과정에서 시간 배분을 하지 못해 처음 콘셉트와 요리가 달라져 애를 먹었다"며 "마케팅 포인트를 분명하게 어필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두 시간 이상을 소모하는 긴 면접이지만 회사 측과 지원자들은 요리 면접을 통해 직무 적합도를 확실하게 알 수 있어 긍정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원자 강명원 씨(27·남)는 "10~15분이면 끝나는 일반 면접과 달리 요리면접은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더 드러낼 수 있어서 좋았다"며 "회사에서 어떤 인재를 원하는지, 입사하게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동료들과 협업하는 지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샘표식품 관계자는 "일반 면접에서 알기 어려운 지원자들의 성격이나 성향, 일하는 방식, 갈등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 등을 요리 면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뽑힌 지원자들은 훨씬 더 빠르게 적응하고 직무 만족도도 높다"고 밝혔다.
글= 한경닷컴 노정동 기자 / 사진= 한경닷컴 변성현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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