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학자들, '대선 보궐선거' 주장에 갸우뚱… '허술한 헌법'

입력 2013-12-10 17:30
수정 2013-12-11 08:46
노 前대통령 탄핵소추, 진보당 해산청구도 마찬가지… 현안 못 따라가 문제


[ 김봉구 기자 ] 지난 8일 민주당 장하나 의원(36·사진)이 박근혜 대통령 사퇴와 대선 보궐선거 실시를 주장해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적법성 여부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10일 헌법학자들에 따르면 장 의원이 주장한 대선 보궐선거 실시를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해당 조항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주장의 타당성이나 정치적 입장과는 별개로 논란이 된 사안에 대해 제대로 법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게 문제란 지적이 뒤따랐다.

헌법에서 이번 사안과 관련된 내용으로는 △68조 '대통령이 궐위(闕位)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 △71조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 등의 해당 조항이 있다.

그러나 궐위·사망·판결 기타의 사유 등이 적시돼 있을 뿐, 장 의원의 주장을 법적으로 가릴 구체적 사유는 명시돼 있지 않다.

성균관대 김일환 교수(헌법전공)는 "관련 조항엔 대통령 자진사퇴를 사유로 든 내용이 없다"며 "정확한 해당 사유나 선례가 없어 만약 자진사퇴를 전제로 대선을 다시 치른다 해도 보궐선거가 될지, 재선거가 될지 역시 분명치 않다"고 꼬집었다.

보궐선거와 재선거란 용어도 혼동해 사용될 만큼 정확한 개념 정의가 부족한 편. 보궐선거는 임기 도중 각종 사유로 인한 요구에 따라 선거를 다시 하는 것이다. 또 재선거란 선거 자체가 무효화 돼 다시 선거하는 것인 만큼 다른 사안에 해당된다.

논란이 된 지난 대선의 경우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등 국가기관 개입에 따라 선거가 무효란 판결이 내려지면 자동적으로 재선거를 치르게 된다. 반면 장 의원은 법원 판결과 별도로 박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 후 선거를 다시 치르자는 뜻에서 보궐선거를 제안한 것으로 해석된다.

장 의원은 당초 개인성명을 발표하며 보궐선거란 표현을 썼다가 이후 재선거란 용어도 섞어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고려대 장영수 교수(헌법전공)는 "임기 중에 궐위됐을 때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을 '보궐'이라 정의한다면 대선 보궐선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고 전제한 뒤 "다만 잔여임기를 채우는 형식의 통상적인 보궐선거를 지칭하는 것이라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장 의원이 주장한 대통령 자진사퇴와 보궐선거 실시가 적법한지 헌법으로 가려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진사퇴가 해당 확정사유에 포함돼 있지 않을 뿐더러, 만에 하나 대선을 다시 치른다 해도 보궐선거와 재선거 가운데 어떤 형태를 적용할지도 확실치 않다.

동국대 김상겸 법과대학장(헌법전공)은 "기본적으로 공직선거법에 의해 판단할 문제지만 대선은 다른 선거와 달리 요건이 엄격하고 사안이 중대해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고 귀띔했다.

때문에 헌법이 현안을 제대로 못 따라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번 사안뿐 아니라 2004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최근 정부가 통합진보당을 상대로 낸 위헌정당 해산심판청구 등도 현행 헌법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사안들이다.

김일환 교수는 "1987년 9차 개정 이후 헌법에 변화가 없어 시대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불확실하거나 논리적 오류가 있는 대목이 존재한다"며 "당시엔 위헌정당 해산이나 국회의원 자격 상실, 대통령 탄핵과 자진사퇴 등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권해석으로만 가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이 같은 부분에 대한 헌법 개정을 고민해볼 때"라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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