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더크 밴 니커크 한국베링거인겔하임 사장 "직원들과 저녁때 소주 한잔…회식문화 좋아요"

입력 2013-12-05 21:18
수정 2013-12-06 05:05
네덜란드 이민 3세…남아공서 자라, 국제적 마인드 타고났다고 자부
한국 '빨리빨리' 문화 적응 힘들어…'내편 보호' 관행도 바뀌어야
2012년 직원 270명 남아공 포상휴가…최고의 결과에 최고 보상은 당연


[ 김형호 / 은정진 기자 ] 더크 밴 니커크 한국베링거인겔하임 사장과의‘ 맛있는 만남’은 일요일이던 지난 1일 낮에 이뤄졌다. 그 전주는 외국 출장 중이었고, 그 다음주는 4일간의 임원 워크숍이 예정돼 있었다. 워크숍이 끝나면 바로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겨울 휴가를 떠난다. 만날 시간이 주말밖에 없었다.


‘서양인들은 주말에 인터뷰를 잘 하지 않을 텐데…’라고 걱정하면서 “주말에라도 만나자”고 요청했다. “좋다”는 응답이 곧바로 왔다. 그는 즐겨 찾는 서울 후암동 이탈리아 레스토랑 ‘일 비노로소’를 약속 장소로 잡았다. 서울역 쪽에서 남산 소월길을 따라 한남동 방향으로 가다보면 나오는 독일문화원 옆에 있는 식당이었다.

○“아시아 국가에서 일하고 싶었다”

약속시간 20분 전인 오전 11시40분쯤 기자들이 식당에 도착했다. 먼저 온 김성진 홍보담당 이사와 얘기를 나누다 니커크 사장이 언제쯤 도착할지 궁금해 운전기사에게 전화하니 “10분쯤 전에 왔다”고 했다. 깜짝 놀란 김 이사와 기자들이 식당 밖으로 나갔더니 니커크 사장은 정원에서 본사 사진기자와 만나 천연덕스럽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취미는 골프”라며 잔디밭 위에서 스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니커크 사장은 네덜란드 이민 3세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이다. 남아공 프리스테이트대에서 미생물학과 유전자 분야를 전공한 뒤 독일계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에 입사했다. 17년 만에 남아공 법인 사장에 올랐다.

그가 한국베링거인겔하임 사장으로 한국에 온 것은 지난해 5월. 독일 본사에서 “어느 나라를 맡고 싶으냐”고 묻자 서슴없이 “아시아”라고 얘기한 것이 계기였다. 아시아 지역의 경제적 역동성에 평소 관심이 많았던 데다 동양을 알고 싶다는 개인적 욕구가 작동했다. 니커크 사장은 “유럽이나 남아공 사람들은 아시아 지역에서 근무하는 것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다”며 “내가 아시아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본사에서 신기해 하면서 들어줬다”고 말했다.

니커크 사장은 1주일에 한 번 정도 ‘일 비노로소’를 찾는다. 식탁에 앉은 그가 메뉴판을 펴더니 “허기질 때는 호주산 안심슬라이스가 들어간 카파치오를 애피타이저로, 양갈비를 메인 요리로 고른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은 “해외 출장의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며 토마토 수프와 양갈비 스테이크를 선택했다. 반주로 고른 와인은 ‘클로 플로리덴’(프랑스 보르도산)이었다. 남아공산 ‘소비뇽 블랑’ 와인을 즐기는데, 한국에서는 찾을 수 없어 이 와인을 마신다.

○“기러기 아빠, 나쁘게 볼 것 없어”

해양 강국이던 네덜란드 혈통과 남아공 국적을 갖고 독일 회사에 다니는 그에게 ‘문화 차이’는 매우 익숙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법인장으로 결정된 이후 여러 가지 준비도 했을 것이다. 한국에 와서 ‘컬처 쇼크(문화 충격)’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니커크 사장은 ‘빨리빨리’ 문화를 꼽았다. 한국인이 속도를 중시한다는 얘기는 여러 번 들었지만 이 정도로 빠를지는 몰랐다는 것이다. 그는 “업무를 하거나 토론을 하다 ‘잠시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면 다들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바로 결정해주길 기다린다”며 “적응하는 데 상당히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독일에서는 예측 가능성이 높고 업무 진행 방식도 이미 정립돼 있는 반면 한국은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변해 예측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장점이면서 단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토마토 수프를 먹고 나자 양갈비 스테이크가 나왔다. 남아공에서 먹던 것과 맛이 다른지 묻자 그는 거의 비슷하다고 했다. 와인이 한 순배 돌면서 자연스럽게 개인사로 이야기가 옮겨갔다.

지난해 말 재혼한 니커크 사장은 한국의 ‘기러기 아빠’들과 동병상련 처지다. 부인은 전 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자녀 교육 때문에 남아공에 남아 있다. 결혼 후 1년째 성북동 단독주택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다. 부인은 6주에 한 번꼴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왕복 비행 시간이 48시간이나 걸리는 장거리 여행이다.

니커크 사장이 혼자 살기에 편리한 도심의 주상복합아파트 대신 고즈넉한 성북동 단독주택을 고른 것도 한국을 찾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교육열은 남아공에서도 유명하다”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도 한국 학생이 100여명 있다”고 전했다. 그는 “기러기 아빠 현상도 현대인의 생활방식 중 하나”라며 “유럽에서도 예를 들어 주중에는 독일에서 일하고 주말에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가족이 많기 때문에 한국의 기러기 아빠 현상이 전혀 낯설지 않다”고 했다.

가족이 오지 않는 주말에는 지인들과 서울 근교에 있는 산에 오르거나 골프를 한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직접 장을 보러 다닌다. 그는 “주로 토요일 아침에 집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데 머리숱이 없는 외국인이 혼자 돌아다니는 경우가 흔치 않아서인지 이제는 다들 알아보고 도와준다”며 웃었다.

○산낙지는 아직도 못 먹어

니커크 사장은 한국식 이름을 갖고 있다. 반덕호(潘德浩)다. 그가 온 지 1년이 지난 올해 5월 직원들이 지어줬다. 그는 “덕(德)이라는 뜻이 영어로 ‘virtue’라고 들었다”며 “너무 좋다”고 자랑했다. 명함뿐만 아니라 성북동 집에도 한국명으로 문패를 달아 놓았다.

그가 한국 생활에서 가장 즐기는 것 중 하나는 ‘직원들과의 회식’이다. 직원이나 고객과 회의한 뒤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소주를 마시는 것을 즐긴다. 특히 국내 파트너사인 유한양행의 김윤섭 사장과는 한 달에 서너 번씩 만나 격의 없이 소주잔을 기울일 정도로 친하다.

니커크 사장은 “같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로서 한마음을 느끼고 업무의 긴장감도 풀어주기 때문에 한국의 기업문화 가운데 회식문화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과 회식할 때는 오후 9시쯤 되면 계산하고 먼저 자리를 뜬다.

세계 어떤 음식이라도 자신있다는 그에게 공포심(?)을 안겨준 것은 ‘산낙지’였다. 그는 “지방 출장길에 직원들과 회식을 했는데, 한 직원이 살아있는 낙지를 나무 젓가락에 말아서 주는데 정말 무서웠다”며 “먹다가 목에 걸리면 죽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 때문에 결국 도전에 실패했다”고 고개를 저었다. 옆에 있던 김 이사가 “그때 직원이 줬던 낙지는 세발낙지가 아니라 큰 낙지였던 것 같다”며 “낙지 빼고는 대부분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고 거들었다.

○성과 포상은 확실하게

메인 메뉴인 양갈비 스테이크를 다 먹고 나자 직원이 후식 주문을 받았다. 니커크 사장은 ‘투샷(더블)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너무 진하지 않으냐고 하자 그는 “양갈비처럼 기름진 것을 먹었을 때는 투샷 에스프레소를 마신다”고 했다. 그는 하루 내 커피를 달고 사는 커피 마니아다.

니커크 사장은 지난해 말 270여명 전 직원을 남아공으로 포상휴가를 보내 화제가 됐다. 부임 초 ‘연간 목표를 달성하면 모든 직원을 남아공으로 포상 휴가를 보내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은 니커크 사장 부임 이후 고혈압 치료제 ‘트윈스타’와 당뇨병 치료제 ‘트라젠타’를 앞세워 국내 시장에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모든 직원을 남아공으로 여행 보낸 것은 회사로서 무리한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환상적인 결과에는 환상적으로 보상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그런 인센티브를 제시한 것은 직원의 열정을 높이기 위해서였다”며 “기존 틀을 깨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의 사고 크기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잘한 사람에 대한 보상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성과를 칭찬해주고 감사를 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분기별로 우수 실적을 낸 직원과 가족을 초청해 사장이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 서비스를 하는 ‘캡틴스 테이블’ 행사도 그의 아이디어다.

베링거인겔하임은 128년간 의약품만 개발해온 제약사로 글로벌 매출이 40조원에 달한다. 매년 4조원가량을 연구개발비로 쓰고 있다. 니커크 사장은 “연간 매출이 수십~수백조원인 다국적 제약사들이 매출의 20~25%를 연구개발에 투입하는 데 반해 한국 제약사들의 연구개발비 비중은 평균 7~9%에 그치고 있다”며 “혁신적 신약은 인내심을 갖고 연구개발비를 늘려야 나온다”고 말했다.


더크 밴 니커크 사장의 단골집 일 비노로소 석쇠에 구워 부드러운 양갈비 스테이크

현대건축가 김수근 씨가 남산 자락에 지은 개인 주택을 개조해 만든 이탈리아 레스토랑. 외국인에게 인기가 있는 양식당이다.

더크 밴 니커크 한국베링거인겔하임 사장이 추천한 메뉴는 신선한 채소와 해산물에 칠리소스와 토마토를 넣어 만든 ‘토마토 수프’. 느끼하고 밋밋한 기존 수프와 달리 매콤한 맛을 자랑한다. 1년 미만 호주산 양갈비를 석쇠에 구워낸 양갈비 스테이크는 고기 위에 다진 마늘을 얹어 누린내가 나지 않았다. 초록빛이 도는 특제 로즈메리 오일소스를 찍어 먹으면 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토마토 수프는 1인분에 1만6500원, 양갈비 스테이크는 5만원(300g)이다. 영업시간은 낮 12시~밤 10시. 오후 3시부터 6시까지는 커피타임이다. 평소 붐비지는 않지만 창가 좌석에 앉으려면 3~4일 전에 예약하는 것이 좋다. (02)754-0011

김형호/은정진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