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프런티어
태양흑점 폭발 관측해 항공기·전력 오작동 미리 차단
북극항로 운항도 조정
[ 김보영 기자 ]
지구에서 600㎞ 떨어진 우주 공간. 평화롭게 떠 있던 우주왕복선이 갑작스레 날아든 인공위성 파편과 충돌해 완전히 망가진다. 허블 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해 왕복선 바깥에서 작업하던 여성 과학자는 돌아갈 곳을 잃고 미아 신세가 된다. 지난 10월17일 개봉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그래비티’의 첫머리다.
영화에서는 러시아가 미사일로 자국의 첩보 위성을 파괴하면서 파편이 생기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위성을 폭파하지 않아도 충돌의 위험은 언제나 존재한다. 대표적 원인 중 하나는 태양의 흑점 폭발로 인한 시스템 오류다. 태양에서 온 고에너지 입자로 인해 통제가 되지 않는 ‘좀비’ 위성이 되는 것. 실제로 미국의 ‘갤럭시15’ 위성은 태양 흑점 폭발에 영향을 받아 2010년 4월부터 12월 말까지 약 9개월 동안 관제가 불가능했다.
태양 활동은 위성뿐 아니라 항공기나 지상의 전력 인프라 오작동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각국에서 태양의 활동을 관측하고 예보하기 위해 우주기상센터를 운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국립전파연구원 우주전파센터가 이 역할을 맡고 있다.
○태양폭풍 생기면 항공사·발전소에 알려
태양 흑점이 폭발하면 X선과 고에너지 입자, 코로나 물질 등이 우주로 방출되는 ‘태양 폭풍’ 현상이 발생한다. X선은 10분 내, 고에너지 입자는 수시간, 코로나 물질은 2~3일 후 지구에 도달해 지구 전리층과 자기장을 교란한다. 교란으로 인해 단파(3~30㎒) 통신·위성 통신 장애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고 심하면 전력시설까지 파손될 수 있다.
홍순학 우주전파센터 연구사는 “올해는 11년 주기로 태양 흑점이 많아지는 극대기라서 벌써 3단계 태양 흑점 폭발 경보가 14회나 발령됐다”며 “캐나다 퀘벡주에서는 1989년 태양 폭풍으로 변전소가 파괴돼 도심 지역이 아홉 시간 동안이나 정전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우주전파센터는 태양 활동을 관측해 우주 전파 이상을 예보하고, 실제 이상 상황이 발생하면 관계 기관에 신속하게 알리는 일을 맡고 있다. 경보를 통해 흑점 폭발의 규모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면 관계 기관은 위성을 안전모드로 변경해 전파 송·수신을 차단하거나 유도 전류로 인한 발전소 고장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력 소비를 분산시키는 등 대책을 세울 수 있다. 북극 항로 운항 건수가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국내 항공사는 항로를 우회한다.
센터는 자체적으로 우주 전파환경 관측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예측 모델과 예보 서비스를 개발하는 연구개발 업무도 담당한다.
○전파 방해 없는 제주도에 자리 잡아
제주공항에서 자동차로 약 40분 거리인 제주시 한림읍의 우주전파센터에는 전자공학 물리학 등을 전공한 25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기존에는 전파연구원 이천분원에서 태양 활동에 대한 우주 환경을 연구하다가 2011년 8월 전담 조직으로 설립됐다.
제주도에 자리 잡은 것은 방해 전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홍 연구사는 “태양 활동은 광학 관측과 전파 관측이 가능하다”며 “우주전파센터는 전파로 관측하기 때문에 전파 사용이 적은 제주도가 최적의 입지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센터 측은 “우주 날씨를 예보하는 ‘우주전파예보관’은 기초과학 전자공학 지식을 활용해 우주 환경에 대해 분석하는 매력적인 신생 직업”이라며 “최근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견학을 신청해 설명을 듣는 등 센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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