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일촉즉발 '글로벌 환율전쟁'…최대 피해자 '한국'

입력 2013-12-01 21:39
수정 2013-12-02 04:31
美 달러 약세 모두 바라지 않아
대규모 경상수지흑자 관리해야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대내외 외환시장이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오바마 정부 출범 초부터 추진해온 달러 약세 정책을 당초 예상보다 오래 고집함에 따라 한동안 잠잠하던 글로벌 환율전쟁이 일촉즉발 국면으로 몰려가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글로벌 환율전쟁 등과 같은 특정 경제현상에 대한 시장참여자들의 시각과 이에 따른 결과는 ‘게임 이론’이 잘 설명한다. 경우의 수를 따지면 모두가 바라는 ‘포지티브 게임’, 한 참여자는 바라지만 다른 참가자는 바라지 않는 ‘제로섬 게임’, 모두가 바라지 않는 결과를 낳는 ‘네거티브 게임’이 나올 수 있다.

대부분의 경제현상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게임 이론으로 특정 경제현상을 파악하기 위해 시장참여자들이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가 전제돼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달러 약세도 각국이 당면한 경제현안과 거시정책상 우선순위 관점에서 득실을 따져 과연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지 알아봐야 한다.

미국은 내년 1~2월 예산안 및 연방정부 부채 법정한도 확대 협상을 앞두고 재정지출 삭감이 불가피하다. 금리변경의 잣대가 되는 핵심 소비자물가도 안정돼 있다. 대신 오바마 정부는 고용창출 등 남아 있는 금융위기 과제를 극복하기 위해 경기는 계속 부양해 나가야 한다.

이 때문에 통화나 대외정책 면에서 경기부양 여지가 크게 줄어든 재정정책을 보완해야 이런 과제를 달성할 수 있다. 통화정책 입지까지 줄어들 출구전략 추진을 앞두고 있는 오바마 정부로서는 출범 초부터 은밀하게 추진해온 달러 약세 정책을 내심 더 바라는 상황이다.

올 하반기 이후 유럽 경기는 나아지고 있지만 지난 3년간 끌어온 재정위기를 극복하려면 갈 길이 멀다. 아직까지 유로 본드 발행 등 재정위기를 몰고 온 근본적 문제 해결에 아직 커다란 진전이 없다. 유로화 가치는 약세가 바람직하나 달러화 약세로 유로당 1.35달러 내외까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유로화 강세가 재정위기 극복과 경기 회복의 결과라면 유로 회원국뿐 아니라 세계경제 전체로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위기 발생국인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입장에서는 버거울 수밖에 없다. 현 상태에서 최근처럼 유로화 가치가 강세를 보일 경우 재정위기 극복과 경기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선행의 역설’에 말려들 가능성이 높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이후 계속된 ‘잃어버린 20년’을 딛고 일어서려면 재정확보가 전제돼야 한다. 재정이나 통화정책 면에서 여지가 거의 없는 일본 정부로서는 마지막으로 기대하는 곳은 국민, 그중에서 부유층이다. 거센 정책 저항에도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소비세 인상을 내년 4월부터 추진키로 확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재정사정이 어려워지자 일본 정부는 최후이자 최악의 정책수단인 발권력을 동원한 아베노믹스를 1년 전부터 추진해 왔다. 이미 ‘지브리의 저주’와 ‘세 가지 독배설’이 나돌 정도로 부작용이 크게 나타나고 있지만 아베 정부는 돌이킬 수 없다. 정치적 입지만을 위해서라도 엔저를 그대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세계경제 성장주도권을 선진국에 내줄 정도로 올해 신흥국 경제가 녹록지 않다. 예측기관들은 내년 신흥국 경기가 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수출을 통한 압축성장에 익숙한 신흥국 입장에서는 우려되는 ‘경착륙’과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자국 통화 가치를 약세로 유도하려는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결론적으로 당분간 미국이 바라는 달러화 약세를 유럽, 일본,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이 쉽게 수용할 수 있는 국면이 아니다. 참가자들이 싫어하는 게임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다. 미국이 달러화 강세로 다른 국가들이 바라는 자국 통화 약세를 수용하지 않으면 글로벌 환율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외환사정이 풍부한 상황에서 국내 증시에 양적완화와 출구전략을 동시에 겨냥한 도피성(shelter) 외국자금까지 들어오고 있다. 특히 올해 경상수지 흑자는 6%(GDP 대비)를 넘어 201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 회담에서 우리가 제안했던 ‘4% 룰’에 스스로 걸릴 가능성이 높다. 주변국의 원화 절상 요구에 맞설 근거가 약하다는 의미다.

현 상황에서는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지나치게 많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관리가 필요하다. 국제통화기금이 권유한 ‘영구적 불태화 개입(PSI)’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PSI란 국부펀드나 내국인을 권유해 외자가 유입될 때에는 해외자산을 사들이고, 이탈 시에는 이 자산을 들여와 급격한 외자 유출입에 따른 환율 급등락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