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태풍에 꺾인 가지에 돋은 새싹

입력 2013-11-29 21:23
수정 2013-11-30 10:31
'하이옌'이 타클로반에 남긴 아픈 상처
한국의 발빠른 구호활동이 치유 도울것

두정수 < 코이카 이사 >


필리핀 타클로반 현지의 민·관·군은 수일 전부터 초강력 태풍 하이옌의 상륙에 대비했다. 지난 9일 오전 7시부터 불어닥친 하이옌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공항 등 저지대에는 6m 이상의 해일이 덮쳤다. 타클로반 도심에는 2m 높이의 바닷물이 유입됐다. 타클로반 지역 사망자만 5200명에 달했다.

한 남자의 망연자실한 표정은 더 두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첫 번째 바닷물이 들어 왔을 때 그는 두 자녀를 양팔로 한명씩 안았다. 두 번째 바닷물이 들어 왔을 때 왼팔로 껴안은 아이가 사라졌다. 세 번째 바닷물에 나머지 아이도 잃었다. 그러고도 네 번째 바닷물이 연이어 들이닥쳤다. 인구통계가 정확하지 않은 필리핀에서 그렇게 명을 달리한 아이들의 죽음은 사망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한국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태풍 발생 3일째 외교부, 코이카, 국립중앙의료원, 중앙 119 구조본부로 구성된 선발대가 현지에 도착했다. 해외 긴급구호대 중 가장 빠르게 의료 및 구조활동 현장에 배정받았다.

한국 의료팀은 타클로반에서 주립병원 의료팀과 함께 중심 의료센터로 활동 중이다. 현지의료 인력과 협진을 통해 하루 평균 300여명을 진료 중이나 최근에는 500여명 이상의 환자가 몰리고 있다. 주민들 사이에 우수 의료기자재, 친절한 의료인력, 충분한 약품제공으로 소문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구조팀은 지금까지 2진에 걸쳐 40여명이 파견돼 활동 중이다. 주요 임무는 사체수습과 방역활동이다. 학교 부지에서 어린아이의 사체 1구를 수습했다. 이를 지켜보던 주민 중 한명이 오열했다. 아이의 어머니였다. 구조대원들 역시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구조팀이 바다와 육상에서 수습한 사체는 100여구에 달한다. 구조팀의 방역활동도 현지의 큰 반응을 얻고 있다.

코이카는 긴급구호단계에 있는 한국 의료팀과 구조팀의 현장 활동 지원을 넘어 재건복구를 모색 중이다. 국제원조기관 중 최초로 필리핀 재난복구 기초수요조사팀을 현장에 파견해 일로일로주 주지사, 사회개발부 차관 면담 등 재난복구 협의를 시작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80~90%가 파괴된 학교시설, 50% 이상 파괴된 의료시설, 주민생계, 이재민 대피소 지원 등을 모색 중이다. 한국 정부가 약속한 미화 2000만달러는 가족과 생활터전을 잃은 그들의 재활, 재건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태풍으로 가지가 모두 꺾인 이름 모를 나무에 벌써 새싹이 푸르게 돋았다. 그들도 저 새싹처럼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도움을 준 한국, 코리아를 기억할 것이다.

두정수 < 코이카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