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 백승현 기자 ]
부인과 두 아들을 둔 37세의 가장이 왜 열다섯 살 소년을 사랑했을까. 누구나 그렇듯 아무리 무모한 사랑도 자신에겐 운명처럼 느껴졌던 걸까. 끝이 뻔히 보이는 길은 가지 않는 것이라 했거늘, 그 ‘자유로운 영혼’은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졌다. 20세기 문단 최고의 연금술사로 꼽히는 오스카 와일드의 얘기다.
와일드는 1854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안과의사이자 고고학자였던 아버지와 시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스무 살인 1874년 옥스퍼드대에 진학했다. 학창시절 여행시집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등장했다. 졸업과 동시에 전업작가가 돼 내놓는 동화집과 희극마다 큰 인기를 얻었다.
1884년 결혼해 아들 둘을 뒀다. 하지만 와일드는 한 여자의 남편에 머물지 못했다. 결혼 전부터 미소년들이 있는 술집의 단골이던 그는 1891년 알프레드 더글러스라는 15세 소년과 그만 사랑에 빠졌다. 새로운 사랑에 에너지를 얻어서였을까. ‘살로메’(1892) ‘보잘것없는 여인’(1893) 등이 이때 쓰여졌다.
천재작가로서 명성을 쌓아가던 와일드에게 어느 날 우편물이 하나 도착했다. 연인 더글러스의 아버지가 그를 ‘남색’으로 고발했던 것. 결국 재판으로 이어졌고, 와일드는 1895년 풍기문란죄로 2년형에 처해졌다. 출소 후 영국에서 추방돼 더글러스가 살고 있는 프랑스 파리로 갔다. 하지만 더글러스의 마음은 이미 그를 떠나 있었다.
미모의 청년 도리언이 쾌락의 나날을 보내다 결국은 파멸하고 만다는 내용의 대표작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1891). 가족도 연인도 모두 잃은 와일드는 미래를 예견했던 것일까. 파리 뒷골목을 전전하던 그는 뇌수막염을 이기지 못한 채 쓰러졌다. 113년 전 오늘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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