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아 기자 ] 이란과 ‘P5+1(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및 독일)’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지난달 24일 나흘간의 회의 끝에 핵 프로그램과 관련한 합의에 도달했다. 2003년 서방 국가들이 이란 핵개발 의혹을 제기한 지 10년 만에 나온 극적인 타결이다.
#이란, 6개월 한시적 제재 완화
이란은 앞으로 6개월간 5% 이상 농축 우라늄의 생산을 중단하고 현재 갖고 있는 20% 이상 농축 우라늄의 재고를 전량 중화하는 한편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를 새로 만들지 않기로 했다. 우라늄을 5% 이상 농축하면 핵무기로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도 수용했다.
대신 서방국가들은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를 일부 풀기로 했다. 미국 백악관이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P5+1 국가는 이란에 대한 금 귀금속·자동차·석유화학 부문 거래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이란은 15억달러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또 이란산 석유 판매에 대한 제재도 일부 완화, 이란 정부가 42억달러의 해외 자산을 회수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백악관은 성명에서 “각종 제재 완화를 통해 결과적으로는 이란이 약 70억달러의 경제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고 추산했다. 이날 발표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제재는 그대로 유지된다.
이란과 P5+1은 6개월 뒤 스위스 제네바에서 추가 회담을 갖기로 했다. P5+1은 이번 합의안이 앞으로 6개월 동안만 유효한 임시 합의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란이 합의안을 지키지 않으면 언제든 추가 제재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성명에서 이번 협상 타결에 대해 “이란의 핵 개발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해결을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평했다. 다만 “6개월 동안 이란이 합의안을 지키지 않을 경우, 미국은 제재 완화 조처를 철회하고 추가로 압력을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당사국들 일제히 환영했지만…
이란 핵협상에 참가한 각국 대표들은 타결 성공에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란과의 첫 협상 타결은 중요하고 고무적인 결과”라면서 “앞으로 6개월 동안 이란의 핵 개발 진행을 막고, 일부는 후퇴시키게 됐다”고 평했다. 프랑스의 로랑 파비우스 외무장관은 “수년간 지지부진한 교착상태 끝에 이뤄진 제네바 합의는 안보와 평화를 지키는 데 중요한 걸음”이라고 전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내각 출범 100일 기념 연설에서 “제네바 협상은 매우 긍정적인 첫걸음이지만 우리 앞에 놓인 여정은 길다”며 “한 걸음씩 P5+1과 포괄적인 합의를 이루기 위해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란 내 핵협상에 비관적인 관점을 보인 강경파를 향해 “심지어 이란 안에도 유치하게 행동하고 있는 세력이 있다”고 말했다. 중도 노선으로 꼽히는 로하니 대통령은 서방 국가에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며 해빙 무드를 조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6개월 뒤의 2차 협상도 매끄럽게 마무리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란이 핵개발 자체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제임스 폴락 선임연구원은 “이란이 우라늄 농축 권한을 계속 유지하면서 모든 제재를 해제할 것을 요구할 경우 2차 협상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협상을 주도한 미국 고위 관리는 “이번 합의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뒤로 되돌리도록 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외교가 일각에서는 “서방이 결국 이란의 우라늄 농축 권한을 인정하는 데 동의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그동안 협상 타결에 걸림돌이 돼온 이란의 ‘핵주권’ 문제와 관련, “합의안에 핵 농축을 계속할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됐다”고 말했다.
중동의 유일한 합법적 핵 보유국이자 미국의 동맹국인 이스라엘은 이란 핵협상 타결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스라엘 정부는 성명을 통해 “이번 합의는 기만에 따른 ‘나쁜 합의’”라며 합의안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글로벌 대기업들 "이란으로…"
이란 핵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세계 대기업들은 일제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이란은 세계 4위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체 약 8000만명의 인구 중 25세 이하가 44%를 차지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수십 년간 식량, 의약품밖에 교역하지 못했던 미국 기업은 물론이고 재정위기 탈출을 노리는 유럽 국가들도 이란 시장 개방에 주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1월25일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 따르면 27일부터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리는 제8회 국제자동차부품전시회에 참가하려는 서방 기업인들의 비자 신청 행렬이 길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의 원유수송 선박보험에 대한 제재 완화로 국제선주상호보험(P&I) 클럽과 영국의 로이드, 독일과 스위스의 재보험 회사들이 이란과의 사업 재개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
원유·車부품·철강…이란과 교역정상화 '청신호'
이란 핵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對) 이란 무역이 언제 정상화될지에 산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전면적인 수출 중단 상태인 자동차 부품과 철강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는 전면적인 엠바고(금수 조치)에 가깝다. 생필품을 제외한 모든 제품의 수출입 거래가 차단된 것은 물론 이란 기업과 거래하는 금융회사와의 거래까지 중단시켰다. 이로 인해 올 들어 10월까지 한국의 대이란 수출은 38억909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30.1% 급감했다. 수입도 46억7172만달러로 33.5% 줄었다.
이란에 수출하는 기업 수도 지난해 2612개에서 1361개로 반토막이 났다. 특히 이란 수출 비중이 50%가 넘는 500여개 중소기업은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철강협회 관계자는 “이란 제재가 본격화된 7월부터는 화물선의 직접 취항이 불가능해져 수출이 90% 이상 급감했다”며 “제재가 풀리면 경영난을 겪고 있는 국내 업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동량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운사도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지금은 이란의 항구에 직접 화물을 내리거나 실을 수 없다”며 “제재가 풀리면 석유 수송 물량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조선업체도 이란의 석유 수출이 늘어날 경우 유조선 액화천연가스(LNG)선 등의 선박 발주가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내 경기 침체로 고전하고 있는 건설업계는 ‘중동 특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란은 제재 이전까지 다섯 번째로 큰 해외 건설시장이었지만 2009년 이후 국내 기업의 신규 수주는 전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