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메이커 MD의세계③] "당신이 아몬드를 씹고 있다면 바로 이 사람을 기억하라"…CJ오쇼핑 김윤형MD의 흥행비결

입력 2013-11-29 08:59
수정 2013-11-29 20:12
장기불황에다 '규제 허들'까지 높아지면서 유통업계는 날마다 울상입니다. 1인가구가 급증하는 '솔로이코노미 시대'가 도래했고 합리적인 소비로 자체 브랜드(PL·PB) 개발도 봇물을 이룹니다. 진열대와 TV, 온라인·모바일 구분없이 오늘날 판매경쟁은 손바닥 위에서도 치열합니다. '21세기 베니스의 상인'으로 불리는 MD(merchandiser)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꾸준한 영업력이 곧바로 유통채널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불멸의 '맨파워'로 쓰러져가는 유통기업까지 일으켜 세운 MD의 밤낮 없는 활약상을 생생히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편집자 주>


[ 노정동 기자 ] 열심히 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잘 하는 것, 그보다 더 높은 단계는 즐기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열심히 하는 데다 잘 하고, 그 일을 즐기기까지 하는 사람.

대학 축산학과 시절 이미 MD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놓고 음식과 영양에 대해 공부하며 자신의 목표를 이뤘다는 김윤형 CJ오쇼핑 식품MD 과장(36·사진)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한 봉지면 하루 영양을 챙길 수 있게 만든 '소포장 견과류'로 방송 시작 15분 만에 준비된 전량을 완판시키고, 2년 간 누적매출 100억 원에 이르는 기록으로 새로운 마켓을 만들어 낸 그는 업계 내에서도 '3박자'를 갖춘 식품MD로 유명하다.

"단 하루도 목표 없이 살아본 적이 없다"는 그는 국내 굴지의 유통기업 바이어부터 온라인몰 MD까지 두루 거친 이 업계의 야전 사령관이다.

"급하고 답답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 MD로서 최고의 장점이 됐다"고 설명하는 김윤형 과장의 이야기를 서울 방배동 CJ오쇼핑 본사에서 들어봤다.

◆ 평범한 대학생이 준비된 MD로 '우뚝'…입사 초부터 두각 나타내

김 과장은 구체적인 타깃과 철저한 준비로 MD가 된 케이스다. 대학에서 축산학을 전공한 그는 선후배들이 대부분 사료회사에 취직하는 것을 보고 다른 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대학 때 이미 MD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식품과 영양에 대해서 공부한 제 전공을 보니 유통기업에서 바이어 역할을 하면 괜찮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MD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고 도전하게 됐죠."

준비된 MD는 기업에서 먼저 알아봤다. 첫 도전부터 국내 굴지의 유통기업에 입사하게 된 것. 김 과장은 입사 후 대형슈퍼 담당 바이어로 발령이 났다. 슈퍼는 하루에도 수십건의 신선 식품과 청과물을 검사하고 소비자들에게 최상의 제품을 선보여야 하는 MD들의 격전지 같은 곳이었다.

"청과물 코너는 슈퍼의 얼굴이나 마찬가지인 곳이에요. 소비자들은 과일 맛에 따라 그 슈퍼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마트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처음 보이는 매대가 과일 등 신선식품인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당시 저는 초짜 MD였기 때문에 부담감이 막중했죠."

하지만 그는 준비된 MD였다. 선배 MD들도 쉽게 하지 못하는 상품을 발굴하는 등 입사 초반부터 회사 내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그가 이곳 슈퍼에서 대표적으로 히트시킨 상품은 '캘리포니아 롤'이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캘리포니아 롤은 서울 강남 일대의 유명 레스토랑에서나 조금씩 맛 볼 수 있던 음식이었어요. 지금은 흔한 메뉴가 됐지만 당시엔 희소성이 있었어요. 맛은 물론 먹기에도 간편한 음식이라 슈퍼에서 판매하기에 더 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엔 대형마트나 슈퍼 등을 중심으로 즉석요리 코너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던 때였다. 간편 초밥부터 시작해 핫도그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간식과 남편들의 저녁 식사를 책임져야하는 주부들에게 인기였다.

"캘리포니아 롤을 들여오기 위해 유명 레스토랑에서 일하시던 분을 찾아냈어요. 레시피를 얻고 직접 요리하는 법도 배워온거죠. 레스토랑에서 파는 것과 달리 슈퍼에서 팔 수 있게 최적화된 방법으로 리뉴얼도 해야했고요. 캘리포니아 롤을 슈퍼에서 팔았던 건 아마 업계 최초일 거예요."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캘리포니아 롤을 찾는 주부들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조리를 해야했기 때문에 식자재, 인력 등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했다. 이후 경쟁사에서 줄줄이 캘리포니아롤을 들여왔다.

◆ 소포장 견과류로 '흥행 대박'…"팔로워 아닌 프론티어 돼야"

김 과장은 쫓아가는 쪽(팔로워)이 아닌 앞서가는 쪽(프론티어)이 돼야 한다고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잘나가던 대형 유통기업을 5년 만에 박차고 나와 CJ오쇼핑 오클락 사업부로 자리를 옮긴 것도 자신의 '프론티어'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대형슈퍼처럼 다양한 상품을 다루는 것과 홈쇼핑처럼 파급효과가 큰 것을 동시에 충족시키고 싶었어요. 점점 규모가 커지는 온라인 플랫폼을 갖고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준비된 MD임을 입증한 그는 소포장 견과류를 통해 '일 잘 하는' MD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1인 가구가 급증하는 시대적 흐름과 건강식에 대한 잠재된 수요를 꿰뚫어 보고 만든 상품이 바로 소포장 견과류다.

백화점이나 마트 심지어 홈쇼핑에서도 견과류는 항상 판매하는 상품이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한 가지 종류의 견과류가 대형 포장에 들어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 어느 정도 먹다가 남긴 견과류들이 각 가정마다 쌓여 있는게 다반사라는 게 김 과장의 설명이다.

"한 봉지를 열면 땅콩, 아몬드, 호두, 건포도 등 다양한 견과류를 먹을 수 있게 만들었어요. 견과류 각각의 맛에도 공을 들였고요. 한 사람이 한 봉지를 먹으면 하루의 영양분을 채울 수 있는 콘셉을 갖고 전체적인 기획을 만들었죠."

결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홈쇼핑 판매시작 15분 만에 준비한 물량이 전부 동난 것 언제쯤 구매할 수 있냐는 소비자들의 문의 전화가 줄을 이었다.

"지금은 자동화시스템으로 생산하지만 당시엔 개수와 무게 등을 정확히 계산해 일일이 수작업으로 했기 때문에 하루에 1만 개 정도를 생산하는 게 최대였어요. 주문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죠."

2011년 처음 선보인 소포장 견과류는 CJ오쇼핑의 간판 상품이 됐다. 온라인몰에서 처음 소싱된 이 제품은 고객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홈쇼핑 채널에서도 동시에 판매됐다. 출시 2년이 지난 이 제품은 현재 누적 매출 90억 원을 돌파했다.

"1인 가구라는 사회적 흐름과 함께 저희 제품 이후 업계에선 소포장 견과류 시장이 생겼어요. 트렌드를 이끌어 낸 '대박 상품'인 셈이죠. 현재 유사한 제품이 업계에서 50개 가까이 생산되고 있을 정도로 시장이 커졌어요. MD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 "MD의 세계, 단 하루도 목표 없이 살 수 없는 곳"



준비된 MD에 일 잘 하는 사람으로까지 소문난 김 과장이지만 그에게도 고충은 있었다. 매출에 대한 압박이 그것이다. "단 하루만이라도 목표 없이 살고 싶다"며 쓴웃음을 짓는 그는 MD를 유통업계의 '휘발유'라고 정의했다.

"MD는 최전방에서 회사에 돈을 벌어다주는 사람이에요. MD로서는 당장 매출을 내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MD는 회사를 굴러가게 해주는 휘발유 같은 존재죠. 단기적인 매출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세운 목표는 공회전으로 끝날 수밖에 없어요. MD가 다른 직종과 달리 단기적 목표에 더 중점을 두는 이유죠."

그렇다고 장기적인 계획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물건을 소비자들에게 선보일지 끊임 없이 고민하는 게 MD지만 앞으로 1년 뒤 혹은 10년 뒤에 무슨 제품을 내놔야 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법. 그래서 김 과장은 '물건' 대신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로 후배MD 양성이다.

"당장 들여다봐야할 제품이 너무 많아요. 1년 뒤에 무엇을 팔지 10년 뒤에 무엇을 내놔야할지 지금 고민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그런 일은 후배MD들의 역할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잘 길러놔야하는 거죠."

MD 양성은 여전히 도제식으로 이뤄지는 곳이 많다. 선배MD가 일하는 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배우는 식이다.

"유태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후손들에게 전달하는 것처럼 선배MD들도 그래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조직문화를 갖고 있는 곳만이 '대박' 상품들을 끊임 없이 고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것이고요."

자신이 내놓은 상품이 소비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는 김 과장은 또 다른 '대박' 상품을 선보이기 위해 다시 수첩을 꺼내들었다. 알맞은 타이밍에 내놓을 수 있는 제품들을 꼼꼼히 메모하기 위해서다.

"낚시하는 사람들의 즐거움이 낚아챌 때의 그 손 맛인 것처럼 MD들도 큰 매출을 올렸을 때 그 짜릿함이 있어요.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과 MD의 공통점은 결국 타이밍인 셈이죠. 때가 왔을 때 내놔야 할 상품들이 있어요. 기존에 없던 제품이면 더욱 좋겠죠."

한경닷컴 노정동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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