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상사 여행] "재산권은 번영의 열쇠"…美 자유주의 세계관 형성

입력 2013-11-22 18:51
(44) 헌법경제학의 개척자 존 로크

17세기 영국은 각종 정파들의 권력투쟁으로 잦은 정변과 혼란의 연속이었다. 귀족과 결탁한 절대군주는 즉흥적이고 자의적 통치로 시민의 재산과 자유를 억압해 시민들의 삶은 불안정했다.

이런 시기에 정치 경제 등 모든 문제의 뿌리는 권력을 무제한 행사하는 전제정부라고 진단하면서 정부 권력이 제한된 국가에서만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 인물이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로크다.

아버지가 변호사였고 부유한 청교도 가정에서 자라난 로크는 철학 신학 정치학 경제학 등 광범위한 분야를 공부했다. 그가 고민했던 건 국가 권력을 제한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에 대한 정치철학적 문제였다. 로크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없는 상태, 즉 ‘자연 상태’를 상정한다. 이 상태가 전제정치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삶의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전제정부의 유일한 대안이 인간들의 탐욕과 투쟁으로 점철되는 무질서일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인해 전제정치를 감내하려는 것을 보면 처량하다고 로크는 개탄한다.

인간이 원래 자신의 생존욕구를 위해 행동한다 해도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면서까지 욕구를 충족할 수는 없다고 로크는 설명한다. 그들의 관계는 자연법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연법은 인간들 사이에 예속관계란 있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들은 모두 평등하며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신체과 소유물 등에 위협을 가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자연법은 결코 양도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다양한 권리를 규정하는데, 그런 자연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과 자유, 재산에 대한 권리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런 권리와 자연법은 사회를 통해 형성된 게 아니라 사회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 누구나 이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영구불멸의 규범이라고 로크는 지적했다. 그런 규범은 정치적 제도와 행위를 판단하고 억제하는 윤리적 잣대다.

인간은 그런 규범을 지킬 만큼 이성적이기에 정부가 없다고 해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일어나지 않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로크의 설명이다.

로크의 자연 상태는 사실상 자유시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자연법을 통해 사유재산의 자유로운 이용과 습득이 보장돼 있고 그래서 타인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침해하지 않는 한 누구나 자유롭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어떤 대상이 어떻게 내 것이 될 수 있는가를 다루는 로크의 재산권 이론이다. 로크가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후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게 그의 재산권 이론이다.

로크의 재산권은 첫째 노동에 대한 소유, 둘째 노동을 통해 생산한 산물에 대한 권리, 셋째 주인 없는 토지나 천연자원에 노동을 가한 결과에 대한 권리로 구성돼 있다. 소유할 자격을 부여하는 게 노동이라는 뜻에서 로크의 이론을 ‘노동의 소유자격 이론’이라고 부른다.

로크는 재산권을 신이 부여한 권리라는 도덕적 이유로 정당화하지만 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호소력이 없다. 그래서 재산권이야말로 인간들의 근면과 저축, 자본 축적을 통한 번영의 열쇠라는 경제적 이유를 들어 정당화하고 있다.

로크는 영국이 경제적으로 네덜란드에 뒤처진 이유도 자본시장 규제를 비롯한 정부 규제를 통해 재산권을 침해한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시장에 맡기는 게 희소성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면서 경제적 번영을 이룩하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경제에 대한 그런 인식은 애덤 스미스보다 100년이나 앞선 생각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사회계약’이라는 단어로 설명하는 로크의 국가관이다. 국가 없이도 질서 유지가 가능하지만 개인들이 스스로 재산을 지키거나 권리의 분쟁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로 국가가 필요하다는 게 로크의 설명이다. 그가 주목한 것은 정부 권력을 제한하는 방법이었다. 정부는 필요하지만 악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를 제한하지 않으면 폭정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그의 사상에서는 자연법이 권력을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자연법이 정치적 행위와 제도를 판단하고 제한하는 기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권력 행사는 즉흥적인 법이 아니라 자연법에 부합하는 법률에 따라야 하는데, 그런 법은 재분배 복지 또는 공공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유와 생명, 재산을 보호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시민의 대표자 동의 없이는 세금도 없다는 로크의 원칙도 재산권 보호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로크는 헌법적 차원에서 통치자 권력의 한계를 명확히 하고 그 한계를 넘어설 때는 통치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헌법적 장치를 마련했는데, 이게 그의 탁월한 공로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로크가 국가 권력을 제한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헌법경제학’의 개척자로 불리는 이유다.

민경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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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찰스1세 등 집권자의 자의적 조세에 대응논리

로크 사상의 힘

로크의 자연법 사상은 사회가 형성되기에 앞서 권리와 법이 존재한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사회에 앞서 어떤 권리도 존재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그의 이론에 오류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산권 개념은 사람들이 가진 것에 대한 상호존중의 규칙이 정립돼 사회가 형성된 후에 비로소 등장한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인간 행동을 안내하는 규칙들도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이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사회적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다는 진화사상도 관심 대상이다. 이성이라는 것도 주어진 게 아니라 사회적 과정에서 비로소 형성되기에 이성의 힘을 빌려 사회를 구성하려는 건 ‘합리주의의 미신’이라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로크의 소유권이론은 소유 대상이 이미 주어져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런 전제는 소유 대상의 유용성을 발견하는 과정을 도외시해 특허권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발견자가 소유자다’라는 원칙을 설명할 수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여러 가지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로크의 사상이 미친 영향은 대단히 크다. 그의 사상은 데이비드 흄, 애덤 스미스, 하이에크 등의 진화론적 자유주의의 전통과 대비되는 합리주의적 자유주의 전통을 확립했다.

로크의 위대한 자유의 원칙은 찰스 1세와 같은 집권자의 자의적인 조세권 행사와 맞서 싸웠던 지적 무기였다. 오늘날까지 영국이 유럽에서 조세부담이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하는 것도 로크의 유산 때문이라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로크의 사상은 미국혁명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런 영향은 그 후에도 꾸준히 작용해 미국인들의 자유주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로크 사상의 영향은 현대 사회의 헌법이 입증한다. 종교의 자유, 재산 수용에 대한 정부의 정당한 보상, 독립된 법원 등 미국 유럽 한국 등을 비롯한 거의 모든 나라의 헌법적 기본원리는 로크의 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