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나도 환경단체에 기부…산사나이 '40년 뚝심' 年35% 성장
등산이 산 망치면 안된다
학교 대신 요세미티 공원서 움막생활…주한미군 복무땐 북한산 등반로 개발
제대후 창업…친환경 등산 장비 '대박'
자원 아끼기 위해 최고의 옷 만든다
고객에 중고 의류 권유하고 바느질 도구 주고 수선법 알려줘
美 아웃도어 2위…올 매출 6700억원
[ 김보라 기자 ]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만든 옷을 사지 마세요.”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자사 제품을 사지 말라고 이렇게 광고까지 하는 사업가가 세상에 있을까. 있다! 1973년 미국에서 탄생한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창립자인 이본 쉬나드 회장(74·사진)이다. 파타고니아는 환경 보호 기업을 목표로 유기농·친환경 원단만 쓴다. 하청업체 복지까지 꼼꼼히 살피다 보니 가격도 다른 브랜드에 비해 훨씬 비싸다. 적자가 나는 해에도 매출의 1%는 꼬박꼬박 기부금으로 낸다. 환경 기준을 어기는 기업은 원가가 아무리 싸더라도 협력사 명단에서 배제시킨다.
‘착한 기업’을 고집하다 보면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수익성 악화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쉬나드 회장은 이런 통념을 뒤집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에도 50%, 이후 연평균 35%씩 꾸준히 성장시키며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었다. 올해 예상 매출은 연 6억3000만달러(약 6700억원). 세계 최대의 아웃도어 시장인 미국에서 노스페이스에 이어 2위로 뛰어올랐다. 현재 세계 77개국에 수출하며 ‘아웃도어계의 구찌’로 불린다. 전문 산악인으로 시작한 쉬나드 회장은 성공 비결에 대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것이 좋은 비즈니스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암벽 타던 산(山)사나이의 깨달음
쉬나드 회장은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의 메인주에서 1938년 태어났다. 아버지는 늘 술병을 들고 살았고, 그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얼굴은 언제나 슬픈 표정이었다. 쉬나드 회장의 어린 시절은 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책상 앞에 앉는 대신 들로 산으로 떠돌아 다니길 좋아했다. 그는 지금도 “수학공식을 외우던 시간이 가장 아깝다”고 말한다.
그는 학교에 갈 시간에 요세미티 공원 등에서 움막 생활을 했다. 고요함이 좋았고, 자연의 거대함에 빠졌다. 산의 정상까지 오르고 싶었지만 제대로 된 장비가 없던 시절이라 그는 손수 대장장이가 되기로 했다. 쇠붙이를 녹이고 두들겨 자신이 쓸 암벽등반 장비를 만들기 시작했다. 몇몇 등반가들에게 소문이 나면서 ‘쉬나드’라는 이름의 암벽 장비를 팔기 시작했다. 처음엔 사업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저 필요해서 오는 사람들을 위해 몇 개씩 만들어 주고 밥값 정도를 받는 게 다였다.
쉬나드 회장은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한창 등산 장비 만들기에 빠져 있던 1960년대 초, 주한미군 징집 영장이 날아온 것. 군대에 가기 싫어 간장을 병째 마셔도 보고 징병을 피하려고 했지만, 결국 끌려오다시피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학교도 싫었던 그에게 군대가 좋았을 리 없었다. 그를 방황에서 건져준 건 역시 산이었다. 힘들 때마다 북한산 인수봉에 자주 올랐다. 길이가 177m에 이르는 암벽 등반로를 암벽화도 없이 한나절 만에 개척했다. 그가 개발한 북한산의 암벽 등반 2개 코스를 지금도 ‘쉬나드 A길, B길’이라고 부른다.
○“등산이 산을 망치면 안 된다”
군대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본격적으로 등산 장비회사 ‘쉬나드 장비’를 만들었다. 마침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인들 사이에 암벽 등반 붐이 일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등산 장비를 갖추고 산으로 몰려갔다. 쉬나드 회장도 그중 한 명이었다. 어느 날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바위산 엘카피탄을 오르던 그는 문득 바위의 균열과 변형을 발견했다. 균열의 원인은 암벽 등반용 쇠못인 ‘피톤’. 강철로 된 피톤을 바위에 박고 빼고 반복하는 과정에서 산이 파괴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피톤 제조사업은 회사의 핵심 사업이었다. 그 사업을 포기하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었지만, 쉬나드 회장은 “아름다운 등반로가 훼손되는 걸 그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과감히 피톤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망치만 사용하지 않아도 훼손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한 그는 못을 박지 않고 암벽의 홈 사이에 끼워 넣어 사용할 수 있는 ‘알루미늄 초크’를 대안으로 떠올렸다. 1974년 ‘헥센트릭스’와 ‘스토퍼’라는 이름의 알루미늄 초크를 피톤 대신 카탈로그에 실었다. 유명 등반가 도 로빈슨의 ‘피톤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라는 제목의 14페이지짜리 에세이도 함께 게재했다. 쉬나드 회장은 이때부터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는 등산 운동인 ‘깨끗한 등산(clean climbing)’ 운동의 전도사가 됐다.
새 카탈로그를 발송한 지 몇 달도 안 돼 피톤의 매출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신 초크는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쉬나드 회장은 “공장 안이 피톤을 만드는 망치질 소리 대신 초크를 만드는 드릴 소리로 가득 찼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가 옳다고 생각한 일을 실행하자, 더 나은 사업기회를 얻었다”고 강조했다. 알루미늄 초크의 성공을 계기로 쉬나드 회장은 친환경 기업으로의 대대적 전환을 선언했다.
○재고처리? 폭탄세일 아닌 기부
서핑, 스키, 등산 등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로 사업을 확장한 쉬나드는 1980년대 또 한번 고민에 빠졌다. 보스턴에 새 매장을 연 지 얼마 안 돼 직원들이 두통을 호소하는 일이 벌어지면서다. 환기시스템 결함으로 포름알데히드가 배출되지 않았던 게 원인이었다. 환기시스템을 고치면서 포름알데히드 연구를 시작했다. 이 물질이 코, 목 등 호흡기에서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알아냈고, 목화를 대량 생산하려면 다량의 화학살충제를 써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당시 목화밭은 미국에서만 매년 1억6500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었다. 결국 원료와 가공법을 대대적으로 바꾸기로 했다. 기존 협력회사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의 유기농 목화 재배 농가와 계약했다. 1994년 가을, 2년 내 100% 유기농 목화를 이용해 옷을 만들기로 선언했다. 18개월간 66개 의류 소재를 유기농 목화로 전환했고, 1년도 안돼 라인업을 갖췄다.
당시 유기농 면을 쓴다는 건 모험이었다. 일반 면은 파운드당 77센트, 유기농 면은 1.8달러였다. 미국 대부분의 회사들은 더 싼 생산비를 좇아 홍콩으로, 중국으로 옮겨가기 시작할 때였다. 원료비가 비쌌고, 이익은 쥐꼬리만큼 남았다. 3년간 재고는 쌓이고 대량 감원도 감수해야 했다. 재고를 헐값에 ‘땡처리’하고 싶은 충동도 느꼈지만, 아무렇게나 버려질 옷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대신 재난 지역 등에 기부하는 방식을 택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뒤늦게 터져나왔다. 파타고니아의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매출은 껑충 뛰었다. 최근 7년간 영업이익은 3배 넘게 늘었다. 다른 기업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이키 등 굴지의 기업들도 유기농 면 제품을 늘리면서 원료비가 동반 하락했다.
○“새 옷 사기 전에 중고 의류부터”
40년간 의류회사를 이끌어온 쉬나드 회장은 20년간 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다. 공식적인 자리에도 늘 낡은 신발에 너덜거리는 바지 차림이다. 그는 “최고의 옷을 만드는 이유는 오랫동안 입어 자원을 아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더 이상 못 입는 옷은 모아서 재생 섬유로 다시 만든다”고 말한다.
그는 새 옷을 사라고 마케팅하는 대신 바느질 도구를 내놓는다. 옷을 새로 사는 대신 나눠 입거나 물려 입고, 수선해 입으라는 게 파타고니아의 대표적인 광고 카피다. 단추 다는 법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수선 동영상 설명서도 만들었다. 중고 장터도 적극 추천한다. “새 옷을 사기 전 이베이의 중고 장터부터 확인하라”고 권한다. 2005년 일본 이베이 사이트에서는 파타고니아의 1980년 제작된 재킷이 4000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이렇게 ‘돈 쓰지 말라’고 강조하는 기업인데도 지난 8월 미국 아웃도어 의류시장에서 파타고니아의 점유율은 노스페이스에 이어 점유율 2위(12.7%)를 기록했다. 산기슭에서 홀로 등산 장비를 만들 때부터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를 이끌게 된 지금까지 40년간 바뀌지 않은 그의 철학은 뭘까. “모든 의사 결정은 지금부터 100년 뒤가 기준입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