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 카페
무료 샘플·친절한 응대…고객 아니어도 서비스 제공
소비자 지갑 열게 만들어
2003년 한 중견 보험전문 D사는 시장의 거대기업들 때문에 고전하고 있었다. 시장 여건이 좋아져 새로운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었지만, 브랜드를 고객에게 각인시키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 유동 고객들이 많은 자동차보험을 먼저 공략해야겠다고 판단했다. 고객의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광고가 필요한데, 자동차보험의 특성상 차별화가 쉽지 않았다. 별도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고객의 마음을 끌어들일 방법은 무엇일까.
많은 기업이 고객의 마음을 끄는 마케팅 방법을 찾으려고 애쓴다. 고객의 마음은 변덕스러워 끌어당기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길은 있는 법. 너무 뻔해서 오히려 놓치는 경우가 많은 단순한 방법이 있다.
EBS에서 방송한 ‘설득의 비밀’이란 다큐멘터리의 시작은 좋은 단초를 제공한다. 길거리에서 행인들에게 이번 주말에 연탄배달 봉사활동에 참석해 달라고 부탁한다. 두 명의 조교가 부탁하는데, 이상하게 두 명은 성과에서 큰 차이를 나타낸다. 성과가 좋지 않은 조교는 처음부터 곧이곧대로 “이번 주말에 한 번만 봉사활동을 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대부분의 행인들은 난색을 보이면서 바쁘다고 말한다.
다른 조교는 뭐라고 부탁했길래 좋은 성과를 얻었을까? 이 조교는 먼저 8주 동안 연탄배달 봉사를 해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행인들이 봉사활동에 참여하기 어렵다고 난색을 보일 때 “그렇다면 이번 주말에 한 번만 봉사활동에 참여해줄 수는 있나요?”라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많은 행인이 “한 번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람들이 두 번째 조교의 부탁에 움직인 이유는 뭘까. 처음 부탁을 거절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는데, 그보다 작은 부탁을 하자 수락했을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미안함은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 위력을 발휘한다. 지금은 신제품이 나오면 대부분 고객들에게 샘플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샘플 사용에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샘플이 처음 우리나라에 등장했을 때 효과는 컸다. 주방용품, 욕실용품을 방문으로만 판매했던 암웨이의 전략이다. 당시 대부분 가정에서는 지인이 가져온 샘플을 써보고 제품이 좋다면서 구매했다. 제품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 점도 있었겠지만, 물건을 사지도 않았는데 써보라며 준 샘플을 받은 소비자들은 미안함에 비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구매했을 것이다.
미국 TV의 래리 킹 쇼에서 ‘변호사 중 변호사’로 소개된 바 있는 로버트 마이어는 자신의 책 ‘현명한 사람의 감성적 협상법’에서 미안함 때문에 자신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스포츠셔츠를 산 경험을 이야기했다. 니만마커스 백화점은 지문이 묻어나지 않는 유리진열장 안에 셔츠들을 진열한다. 마이어가 그냥 나오지 못하고 어울리지도 않는 셔츠를 사게 된 이유는, 입어본 다섯 벌의 셔츠를 다시 곱게 접어 진열해야 하는 친절한 점원을 실망시키기가 너무 민망해서 또는 두려워서였다고 한다.
보험회사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당시 시장에서 날고 긴다는 경쟁사들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가 형편없던 D사는 예상하기 어려운 방식의 광고를 만들었다. 당시 보험회사들의 광고는 대부분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 회사가 고객님을 돕는다’는 식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이를 전면으로 뒤집은 D사의 광고 한 장면.
눈 덮인 산 위에 차가 서 있다. 아빠는 밖에서 자동차 보닛을 열고 쩔쩔매고 있다. 차 안에선 딸과 아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빠를 바라본다. 그런데 산아래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 한 대가 갑자기 고속도로를 벗어나 산 위로 올라온다. 고장난 자동차 앞에 도착한 차에서 내린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D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빠는 난처해하며 “D사 고객이 아닌데…”라고 말한다. D사 직원은 “차보다 사람이 먼저죠”라며 차를 고쳐주고는 그냥 가버린다.
우리 고객이 아니라도 어려움에 처하면 도와주겠다는 D사의 메시지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큰 반향을 얻었다. 고객들은 합리적으로 선택하려고 한다. 하지만 미안함을 느끼면 합리적인 생각을 잠시 접어둔다. 먼저 고객이 미안함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 먼저 주는 마음이 고객을 끌어들인다.
이계평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