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스스로 개혁에는 한계
해법은 민영화·경쟁체제 도입
생산성 높여야 경제 선진화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지금 정부 역량으로는 민생 고통과 공기업 민영화 같은 공공부문 혁신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벅찹니다. 우선 민생의 고통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다른 정책을 쓰기 어려워집니다.” 놀랄 일은 없다. 요즘 얘기가 아니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6월, 당시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 의장의 발언이다. 이명박 정부가 기세 좋게 내걸었던 공기업 개혁의 기치는 이렇게 한 달 만에 사라지고 말았다.
촛불시위의 주력군은 어느 새 공기업 노조로 바뀌어 있었다. 물값이 100배로 뛸 것이라던 ‘수돗물 괴담’이 삽시간에 시위대에 퍼지더니 여고생과 유모차 부대까지 일제히 공기업 민영화 반대를 외치기 시작했다. 촛불집회의 주제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에서 ‘KBS 사수’ ‘공기업 반대’ 등으로 확대되는 것을 보고 아차한 순간 공기업 개혁은 동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철밥통을 깨는 일이 태산을 옮기는 일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였다.
박근혜 정부가 그런 공기업에 다시 메스를 가하겠다고 나선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현오석 부총리가 공기업 CEO들을 불러놓고 “파티는 끝났다”며 고강도 개혁을 예고하더니 박근혜 대통령이 며칠 전 국회 시정연설에서 공기업 개혁을 직접 언급했다. 하기야 언젠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다. 개혁의 목적과 주체, 추진 체계에 대한 확고한 원칙이 서 있는지부터 궁금하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공기업 개혁의 방법이다. 박 대통령은 모든 경영정보를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 공공기관 스스로 개혁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과연 공기업이 스스로를 개혁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지.
며칠 전 전기요금을 대폭 인상한 한국전력의 사례를 보자. 전기료가 인상될 때마다 그랬듯이 한전은 이번에도 국민에게 굳은 약속을 했다. 고강도 구조조정이다. 그러나 한전의 구조조정은 늘 계획만 발표될 뿐, 결과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국민들은 작년에도 한전의 읍소에 두 차례의 전기요금 인상을 감내해줬다. 하지만 국민의 귀에 들려온 소식은 구조조정 성과가 아닌 3000억원에 가까운 성과급 파티였다. 요금을 올려도 적자는 쌓여가고, 방만 경영이 이어지는 곳이 바로 공기업이다. 스스로의 개혁이 파고들 틈이 없다. 공기업 개혁에 민영화와 경쟁체제 도입이 전제돼야 하는 이유다.
민영화와 경쟁체제의 도입 목적은 생산성 제고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공기업의 비중이 17%라는 한국이다. 공기업의 생산성 제고 없이는 성장도, 소득의 증대도 기대할 수 없다.
민영화에 반대가 여전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에는 오류가 있다. 우선 공기업을 민영화하면 가격이 오른다는 주장이다. 공기업이 낮은 생산성에도 낮은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정부가 특혜와 보조금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모두 국민의 세금이다. 그게 정상화되는 과정이 가격 상승으로 비쳐질 뿐이다. 기간산업, 특히 네트워크산업은 민영화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것도 옳지 않다. 철도 가스 전기처럼 망(網)을 기본으로 하는 산업인데, 오히려 이런 산업일수록 경쟁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필요하다. 선진국이 이미 다 경험해본 일이다.
따져보자. 공기업 스스로의 개혁이 가능한가.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공기업은 정권의 전리품이 되고, 정치 백수들은 기세등등하게 낙하산을 탄다. 굳이 LH나 수자원공사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정권의 수발을 들다가 결국 빚더미에 앉게 되는 것이 공기업이다.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가 끝나기 무섭게 다시 청탁에 나서고, 퇴직 후를 기대하는 관료들은 공기업이 제 텃밭이다. CEO는 노조와 타협해 자리를 보전하고 노조는 그 대가로 잇속을 챙긴다. 내부 개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생산성 향상이 전제되지 않은 경제 선진화는 없다. 공기업 자산 규모가 세계 최대라는 한국이다. 광장에 촛불이 다시 등장하더라도 공기업 민영화와 경쟁체제 도입은 반드시 이뤄야 하는 과제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